“다른 팀이 다뤄줬으면 하는 게 제 첫 희망이었습니다.”
반대하고 또 반대했다. tvN 새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 박찬홍 PD는 3년 전 연출을 받은 순간부터 여러 번 고사했다. 학교폭력 이야기를 연출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찬홍 PD는 4일 오후 2시 서울 언주로 임피리얼팰리스에서 열린 ‘아름다운 세상’ 제작발표회에서 연출을 고민한 긴 이야기를 털어놨다. 드라마의 재미를 강조하고 홍보하는 행사에서 “연출을 반대했다”는 PD의 말 자체가 이색적이었다.
‘아름다운 세상’은 생사의 벼랑 끝에 선 아들(남다름)과 그 가족들이 아들의 이름으로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 박희순과 9년 만에 한국 작품으로 복귀하는 추자현이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부모 역할을 맡았다. KBS2 ‘부활’, ‘마왕’, ‘상어’, tvN ‘기억’ 등을 함께 만든 박찬홍 PD, 김지우 작가가 이번에도 의기투합했다.
‘아름다운 세상’이 처음 기획되기 시작한 건 5년 전이었다. 당시 고등학생뿐 아니라 중학생들의 폭력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린 것이 계기였다. 누군가는 다뤄야 할 얘기인 건 분명하지만, 박 PD는 다른 팀에서 다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세상’ 제작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3년 전 ‘기억’이 마무리된 이후다. 박 PD는 반대했다. “너무 지난한 작업이고. 사회문제를 건드리려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연출자로서 자신감이 부족했다”는 이유였다. 그동안 가벼운 소재의 새로운 드라마를 기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지우 작가를 말릴 수 없었다. 어느 날 김 작가가 “아무래도 이거 해야겠습니다. 저희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라고 하자, 박 PD는 아무 소리 못 하고 “네”라고 답했다. 그렇게 드라마 제작이 본격화됐다.
박 PD는 ‘아름다운 세상’을 통해 두 가지 새로운 연출 방식을 시도했다. 현실의 삶을 반영하기 위해 NG 컷을 의도적으로 넣었다. 박 PD는 “우리 인생에 NG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NG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콘티에 없던 의도치 않게 찍힌 장면을 일부러 넣기도 했다. 삶을 자신의 의도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이유였다. 박 PD는 “저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보시면 얼마나 제가 발버둥 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인 만큼 배우들의 각오도 남달랐다. 박희순은 “모든 배역들이 다 살아있고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심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어서 작품에 깊이가 있다”며 “제가 맡은 역할은 감정을 많이 표출하거나 내세우지 않고 참고 버티는 역할이다. 가족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보듬으며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자현은 “대본을 다 읽고 느낀 감정을 시청자 분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가 숙제”라며 “지금도 그 숙제를 하고 있다.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것에 앞장서기엔 많이 부족하지만 제 역할을 충실히 잘 해내려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출연 소감을 전했다.
‘아름다운 세상’은 JTBC ‘리갈하이’ 후속으로 오는 5일 오후 11시 첫 방송 된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