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조업 근로자들의 혈액암 발생 및 사망 위험비율이 높다는 공식적인 결과가 나왔다. 반도체 업계 종사자들이 암 발생률이 높은 고위험군이라는 주장이 근거를 얻게 되면서 소송 및 작업환경 개선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7년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故 황유미 씨 사건 이후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이 혈액암의 원인인가'라는 사회적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안전보건공단은 2008년 반도체 제조업 사업장에 대한 역학조사 실시 이후, 부족했던 당시 역학조사의 한계를 보완하고 충분한 관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10년간 추적조사를 실시했다.
안전보건공단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암 발생 및 사망 위험비를 추적 조사한 결과를 22일 발표했다. 역학조사는 당시 반도체협회 등록되어 있던 제조업 사업장 6개사(삼성전자, SK하이닉스,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 케이이씨, DB하이텍)의 전·현직 근로자 약 20만 명을 대상으로 암 발생 및 사망 위험비를 분석했다.
역학조사 결과 반도체 여성 근로자는 일반국민 및 전체 근로자에 비해 백혈병이나 비호지킨림프종 등 혈액암의 발생 및 사망 위험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혈병의 경우 발생 위험은 일반국민 대비 1.19배, 전체 근로자 대비 1.55배인 것으로 조사됐다. 비호지킨림프종의 경우 발생 위험은 일반국민 대비 1.71배, 전체 근로자 대비 1.92배 인 것으로 나타났고, 사망 위험은 일반국민 대비 2.52배, 전체 근로자 대비 3.68배로 나타났다.
공단 측은 “혈액암 발생에 기여한 특정한 원인을 확인하지는 못하였으나 조사 결과를 종합할 때 작업환경이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사에선 20-24세 여성 오퍼레이터에서 혈액암의 발생 위험비가 높았다. 또 클린룸 작업자인 오퍼레이터, 엔지니어 등에서 혈액암 발생 또는 사망 위험비가 높은 경향을 보였고, 현재보다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높았던 ‘10년 이전 여성 입사자에서 혈액암 발생 위험비가 높았다.
한편 혈액암 외 위암․유방암․신장암 및 일부 희귀암도 발생 위험비가 높았다. 다만 공단은 “반도체 근로자들이 일반국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암 검진을 받을 기회가 많아서 위암 등이 많이 발견된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하고, 희귀암의 경우 사례가 부족하므로 추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역학조사 보고서에서는 반도체 제조업 사업장 근로자의 건강과 작업환경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반도체 제조업의 건강영향에 대한 추가 연구를 실시할 것 등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안전보건공단에서는 반도체 제조업 사업장에서 자율적인 안전·보건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니터링 하는 한편,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를 설립하여 협력업체 및 중소업체를 포함하여 반도체 등 전자산업에 대해 직무별 화학물질 노출 모니터링 시스템 등 위험 관리 체계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안나 기자 la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