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게임중독, 게임보다 '중독'에 주목해야

[기자수첩] 게임중독, 게임보다 '중독'에 주목해야

기사승인 2019-06-05 03:00:00

게임중독 질병분류를 놓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게임이용장애)을 국제질병분류(ICD-11)에 포함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거세다. 다만, 이 같은 논의가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존재를 지운 채 '게임산업의 발전 저해'에만 집중되는 현상은 다소 우려스럽다. 

WHO는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하면서 통제가능성과 지속성, 그리고 빈도 부문의 까다로운 진단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게임 충동에 대한 조절 불능이 나타나고, 일상생활에서 다른 문제보다 게임이 우선순위를 가질 경우, 그리고 문제가 나타남에도 12개월 이상 게임을 지속하는 경우 게임중독으로 진단한다. 또 증상이 아주 심한 경우 12개월이 경과하지 않아도 진단이 가능하도록 했다. 단순히 게임을 많이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게임 외에 일상생활이 어려운 '환자'들이 게임중독에 진단을 받는 것이다. 알코올, 도박 등 다른 중독질환과 마찬가지다.

술을 좋아하고 음미하는 사람에게 '중독'이라 하지 않는다. 또 매주 로또를 사거나 스포츠 경기를 즐기면서 토토, 경마, 경륜 등에 돈을 거는 사람도 '중독자'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히려 수준높은 음주나 스포츠 문화를 즐기고, 만들어나가는 문화인에 가깝다. 

어떤 사람은 술의 맛과 향, 그리고 술자리의 분위기를 즐기는 반면, 어떤 사람은 술의 맛과 향은 고사하고 술자리의 분위기도 즐기지 못하면서 술을 먹는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괴로운 금단현상이 나타나 자기도 모르게 쓰러져 잠들 때까지 들이 붓는다. 이 사람들은 술이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술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가족 등 주위사람을 해치는 것 알면서도 술을 끊지 못한다. 술은 좋은 음식이고 문화 요소이기도 하지만 중독성이 있고, 술의 중독성으로 문제를 겪는 사람이 분명히 존재한다.

컴퓨터게임 또한 즐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그 이면에는 게임을 즐기지 못하면서 매여있는 사람이 존재한다. 게임에 매여서 일상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게임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임중독의 질병등재는 그만큼 게임 문화가 보편화되었다는 의미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자연히 부작용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어떤 이는 높은 차원의 즐거움을 느끼고, 또 다른 이는 그보다 낮은 수준의 즐거움에 그치거나, 중독 문제를 겪는다. 

바람직한 사회와 의료의 역할은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빠져나올 길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번 WHO의 결정은 게임산업을 망가뜨리거나 게이머들에게 망신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다. 단지 중독으로 괴로워하는 환자들을 인정하고, 치료의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게임중독의 본질은 ‘중독’이지 게임이 아니다. 

전미옥 기자 romeo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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