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범’(감독 고정욱)의 주인공 영훈(송새벽)은 대화하는 사람과 시선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목소리는 힘이 없고 말끝은 흐리다. 그는 지친 얼굴로 그러나 절박하게 아내를 죽인 진범을 찾고자 고군분투한다. 자신의 손으로 지운 핏자국을 다시 그리고 스스로의 목을 조른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최근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송새벽은 ‘진범’ 촬영을 앞두고 일주일간 7㎏ 정도를 감량했다고 담담하게 털어놨다. 극 중에서 아내가 살해당한 후 피폐해진 영훈을 그려내기 위해서다. 그는 “체중 조절을 하는 동안 버틸 만큼의 음식만 먹었다”면서 “내가 내 몸에게 굉장히 미안했다”고 영화를 준비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감독님과 체중 감량에 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영훈이 수척하고 항상 지쳐 있는 모습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의견이 맞았어요. 단기간에 살을 빼면 목소리도 바뀌는지,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허스키해지기도 했고요. 온몸에 힘이 빠져있는 듯한 영훈의 모습을 감독님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촬영할 엔도르핀이 솟아나서 힘든 줄도 몰랐는데, 끝나고 나니 감기가 오는 것처럼 조금 힘들긴 하더라고요. 다행히 푹 자고 잘 먹고 털어냈죠.”
보기만 해도 쉽지 않은 역할을 선택한 이유는 사람의 본색을 독특한 방법으로 묘사한 대본 때문이었다. 송새벽은 “끝날 때까지 좀처럼 ‘진범’을 알 수 없는 영화”라는 평에 고개를 끄덕였다. 관객이 계속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는 구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설명이다. ‘진범’의 연극적인 연출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대다수의 장면을 실내 세트에서 촬영했고 대사도 연극 같은 성격이 짙다. 이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송새벽은 “그래서 촬영 전 배우들과 함께 MT를 떠났다”고 귀띔했다.
“현장에서 긴 호흡을 맞춰야 하니까 배우들끼리 빨리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MT를 가자고 먼저 제안했죠. MT에 가서는 작품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친해지기 위해 게임을 많이 했죠. 배우들끼리 마피아게임을 하니까 범인이 누군지 정말 모르겠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친해지고 촬영 전에 리허설을 충분히 했던 게 연기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됐다고 봐요.”
스크린에서 다양한 역할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풀어냈던 송새벽은 지난해 tvN ‘나의 아저씨’를 시작으로 브라운관 활동을 시작했다. 송새벽은 “10년 넘게 다녔던 단골 식당의 주인 할머니가 얼마 전 처음으로 내가 배우인 줄 알아보셨다”라며 TV 매체의 파급력에 관해 말했다.
“영화만 고집했다기보다는 드라마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 속도감을 제가 따라갈 수 있을까 압박감이 있었던 거죠. 역시 따라가기 쉽지는 않더라고요. 하지만 이제 겨우 두 작품 했을 뿐이니, 점점 나아질 것으로 생각해요. 언제든 좋은 제안을 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드라마에 참여할 마음이 있어요. 드라마는 드라마만의 힘이 있더라고요.”
인간 송새벽이 아닌 배우 송새벽이 느끼는 행복도에 관해 묻자,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예전보다는 조금 높아졌다”며 웃음을 보였다. 송새벽의 이름을 처음 대중에게 각인시킨 능청스러운 연기 외에도 다양한 모습을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송새벽은 무엇을 위해 연기할까. 모든 질문을 하나씩 곱씹으며 천천히 답하던 그는 이에 대한 답만큼은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영화를 보며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결국 저는 배우이기 전에 관객인 셈이죠.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공연을 하거나 촬영을 할 때, 누군가 결과물을 보고 위로받거나 공감했으면 해요. 이야기에 나오는 일을 겪은 사람도, 겪지 않은 사람도요. 그건 저 자신도 마찬가지죠.”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리틀빅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