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 모든 면에서 날카로워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들어요. 조금 더 둥글둥글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영화 ‘봉오동 전투’에 출연한 배우들과 감독은 모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혹시 잘못 표현하거나 실수로 뱉은 말 한마디가 영화에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만큼 ‘봉오동 전투’는 작품 외적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영화다. 하지만 영화 내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시원시원한 답변이 이어졌다. 최근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유해진도 ‘봉오동 전투’를 짧게 요약했다. ‘투박한 바위’ 같은 영화라는 얘기였다.
“저한테는 매 작품이 큰 틀로 보면 다르기도 하면서 다 같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봉오동 전투’이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느낌은 없어요. 단지 정말 투박하고 바위 같은 영화란 느낌은 있어요. 이 작품이야말로 진정성 있게 파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던 거죠. 처음부터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동의했던 부분 중에 하나가 액션을 위한 액션이면 절대 안 된다는 거였어요.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나 사투여야 했죠. 전투 장면도 기교가 들어가지 않아요. 그냥 베고 막아내는 투박한 느낌을 그리려고 했죠.”
‘봉오동 전투’에서 유해진은 총 보다는 칼을 잘 쓰는 독립군 황해철로 등장한다. 그가 칼 한 자루를 들고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는 액션 장면은 단연 영화의 백미다. 유해진은 그 장면을 ‘쾌도난마’라고 부르며 신경을 많이 썼다고 털어놨다.
“제가 ‘찢어 죽이겠다’고 하며 나가는 장면부터 긴 액션이 펼쳐져요. 정말 외롭게 화에 가득 차서 진짜 찢어 죽일 것 같은 에너지로 싸워야 하는 장면이었죠. 사실 그 장면은 통쾌함을 주는 데 중점을 뒀어요. 정두홍 무술 감독님이 저한테 많은 칼 쓰는 것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셨죠. 정 감독님이 멋있는 장면도 많이 만드셨고요. 전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니까 잘 모르지만, 정 감독님은 상대적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는 편이라고 해요. 정말 투박한 액션을 하는 분이라고 들었고 그래서 그 장면이 더 잘 살았던 것 같아요.”
‘봉오동 전투’는 유해진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액션부터 코미디, 드라마 등 지금까지 그가 다양한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가 모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정작 유해진은 어떤 연기를 보여주느냐보다 작품에 녹아있는 연기를 하는 것이 숙제라고 했다.
“저한테는 제가 작품에 녹아있는지, 스며들어 있는지가 제일 어려운 숙제예요. 저한테는 그게 연기를 잘한다는 기준이기도 하고요. 어떤 역할은 ‘그 사람이 그 작품에 나왔어’라는 얘길 들어야 하지만, 어떤 역할은 ‘그 작품에서 나왔어?’라는 물음을 들어야 하는 역할도 있어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너 나왔는지 몰랐어. 좀 튀게 하지’라는 말을 해요. 전 그런 말이 정말 속상해요.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모르게 해야 연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요. 전 튄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작품에 잘 녹아있던 배우들을 보면 훌륭한 것 같아요.”
영화 ‘택시운전사’부터 ‘1987’, ‘말모이’와 ‘봉오동 전투’까지. 유해진의 최근 필모그래피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로 가득 차 있다. 이에 유해진은 영화를 찍으며 추상적이었던 이미지들이 점점 짙어진다고 했다. 또 영화에 담기지 않은 숨겨진 역사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다.
“‘봉오동 전투’에 등장하는 처절한 장면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들이 더 진해지는 것 같아요. 역사에 관한 작품들을 하면 할수록 추상적이었던 그 당시 이미지들이 실제로 다가오거든요. ‘봉오동 전투’ 시사회 때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더 들었어요. 영화를 보면서 일본군이 우리에게 했던 것들이 과하지 않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반대로 영화니까 덜 보이는 것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봉오동 전투’가 복잡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고자 하는 메시지도 딱 정해져 있고요. 제 생각엔 말끔하게 목적지까지 가지 않았나 싶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