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손님을 살해한 뒤 시체를 훼손·유기한 이른바 ‘한강 몸통 시신’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시끄럽습니다. 잔혹한 살해 방법이 주는 충격도 크지만, 피의자를 대한 경찰의 태도에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지난 12일 오전 9시쯤 경기 고양시 마곡철교 남단에서 서울한강사업본부 직원이 팔다리가 없는 A씨 몸통 시신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시신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미상이었습니다. 경찰은 40여명의 전담팀을 꾸리고 피해자 신원 파악, 단서 확보 등에 주력했지만 용의자를 특정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시신 일부 외에는 이렇다 할 단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이후 16일 몸통 시신이 발견된 지점에서 약 5㎞ 떨어진 고양시 행주대교 남단에서 오른쪽 팔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지문으로 수사망을 좁혀갔지만, 사건 해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미궁에 빠지는 듯했던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피의자가 종로경찰서를 찾아 자수했기 때문입니다. 피의자는 자신에게 반말하고 숙박비 4만원을 주지 않는 등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A씨를 살해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피의자가 종로서로 오기 전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으로 자수를 하러 갔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자수를 결심했던 피의자는 애초 17일 오전 1시1분 서울경찰청 민원실을 찾았습니다. 피의자가 자수 의사를 밝히자, 민원실 직원은 ‘무엇 때문에 자수하러 왔는지’ 물었습니다. A씨는 ‘강력 형사에게 이야기하겠다’고만 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거듭된 질문에도 A씨가 답하지 않자 민원실 직원은 피의자에게 인접한 종로서로 가라고 안내했습니다.
A씨가 서울경찰청 민원실에 머물던 시간은 약 1분, 이후 민원실을 나온 피의자가 종로서 정문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시3분 정도입니다. 짧은 시간이라고 볼 수 있지만, 피의자의 마음이 바뀌기엔 충분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경찰이 어이없게 피의자를 풀어준 동안 그가 달아났다면 사건은 지금까지 풀리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겁니다. 변심한 피의자가 다시 흉악 범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피해자와 유족 그리고 사건으로 두려움에 떨 시민들을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20일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에 대해 경찰청장을 불러 사건의 전말을 보고받고 엄중 조치와 함께 재방 방지책 시행을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자수하러 온 피의자를 신병 확보, 피의자 인계 없이 그대로 놓아준 경찰을 우리는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공권력은 어떤 기능을 하는 걸까요. 경찰의 깊은 반성과 책임감을 동반한 개선 의지가 필요합니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