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래원이 오랜만에 현실 로맨스로 돌아왔다. 검사나 의사, 조직폭력배 등 전문직 역할로 강한 인상을 보여주던 것과 정반대로 돌아섰다. 특별한 능력도 없고 평범한 디자인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김래원이 이렇게 현실적인 로맨스 영화에 출연한 건 영화 ‘어린 신부’, ‘...ing’ 이후 15~6년 만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가 김래원의 필모그래피에서 의외의 선택처럼 보이는 이유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래원은 작품 선택 이유를 시나리오의 공으로 돌렸다. MBC 드라마 ‘눈사람’ 이후 16년 만에 다시 만나 함께 연기한 배우 공효진의 존재감도 컸다.
“일단 시나리오가 재밌었어요. 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들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반면 이해가 안 되는 면도 있었어요. 전 직장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연애 경험이 없진 않지만 극 중 재훈이처럼 힘들어했던 기억은 솔직히 가물가물해요. 이별을 이겨낸다거나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는 것도 공감이 잘 안 됐고요. 하지만 제가 연기를 하면서 공감을 하진 못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관객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하면서요. 그런 관점으로 시나리오를 봤을 때 많이 당겼어요. 또 표현력이 좋은 공효진씨와 같이 하면 시나리오가 주는 즐거움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극중 재훈은 오래 만난 여자친구에게 파혼당하고 슬퍼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몇 개월을 하루도 술 없이 잠들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한다. 그런 재훈의 순수한 마음이 현실적인 선영(공효진)과 만나 독특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김래원은 잘 이해되지 않는 장면은 김한결 감독과 공효진에게 묻고 대화를 나누며 도움을 받았다.
“효진씨와 감독님에게 많이 물어봤어요. 술 마시고 실수로 선영과 긴 시간 통화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니까 다음날 선영을 피하고 하루 종일 민망해 하잖아요. 전 그게 왜 피할 일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사람이 실수할 수 있잖아요. 내가 무슨 얘길 했는지 묻고 정말 미안하다고, 맛있는 거 사겠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죠. 그리고 재훈이는 감당할 수 없는 아픈 마음을 술로 달래지만, 전 힘들면 술을 안 마실 것 같아요. 술을 마시면 더 힘들어지고 공허해지잖아요.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도 더 커지고요. 아마 재훈이가 저보다 여리고 순수해서 그런 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김래원은 전작인 영화 ‘롱 리브 더 킹’을 마치고, 곧바로 ‘가장 보통의 연애’를 시작했다. ‘큰 형님’으로서 무게감을 갖고 가야 했던 ‘롱 리브 더 킹’과 ‘가장 보통의 연애’는 달랐다. 감독과 프로듀서를 비롯해 대부분 스태프들이 여성이었고, 그가 많은 걸 해야 하는 원톱 주인공이 아닌 공효진과의 호흡이 중요한 영화였다. 김래원은 혼자 애쓰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것을 더 중시하면서 연기한다고 털어놨다.
“대단히 힘들고 어려웠던 건 없었어요. 생각해보면 ‘롱 리브 더 킹’을 할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 저도 여유가 생겼나 봐요. 전에는 사실 열정적으로 노력도 하고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요즘엔 자꾸 비워내려고 노력해요. 물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방식을 바꿔보고 싶은 거죠. 열심히 부딪히면서 지금까지 제가 쌓아놓은 걸 갖고 여유 있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많이 비워내고 있어요. 결국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혹시 영화 속 재훈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제가 잘해서, 혹은 저 혼자 잘해서가 아니잖아요. ‘가장 보통의 연애’를 보면서도 난 저 장면을 못 했는데 효진씨가 앞에서 해주니까 조화롭게 넘어간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효진씨한테 참 고맙죠.”
그의 이야기를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배우 입장에서 자신이 잘 이해되지 않는 역할을 굳이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김래원은 인터뷰를 마칠 때쯤 진짜 목적을 살짝 언급했다. 그 나름대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전 항상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힘들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 작품에 계속 출연했던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 작품은 대부분 안 했던 것 같아요. ‘가장 보통의 연애’도 정말 재밌지만 내가 이 작품에 출연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주인공으로 누가 잘 어울리지’, ‘이 장면은 어떻게 연기해야 하지’ 같은 숙제가 제 안에 자꾸 생겼죠. 전 그런 작품들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