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는 달랐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되는 언론 인터뷰에서 배우들은 작품을 소개하고 촬영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작품에 출연하게 된 계기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 대한 해석을 들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공유의 인터뷰는 달랐다. 질문과 답변의 대부분이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에 출연한 선택 자체로 쏠렸다. 다른 방향으로 질문해도 다시 출연 계기로 되돌아왔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자상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그만큼 작품 외적인 이슈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화제의 영화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끄러웠다. 제작과 캐스팅 소식을 전하는 기사마다 댓글창에는 격론이 펼쳐졌다. 이렇게 논란이 첨예한 영화에 참여하는 건 배우에게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그것도 tvN 드라마 ‘도깨비’의 흥행으로 전성기를 맞이한 공유면 더 그렇다. 그는 출연 계기와 영화를 둘러싼 이야기들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도깨비’ 이후 지쳤던 것 같아요. 대본이 좋아서 행복했지만 많은 일들과 다양한 감정들이 있었어요. ‘내가 좀 지쳤구나’라고 생각한 시기였죠. 드라마 관련 프로모션과 해외활동을 모두 마치고 개인으로 돌아가서 치유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렇게 다시 에너지를 채웠기 때문에 두 작품(‘82년생 김지영’, ‘서복’)을 결정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그분들의 표현을 빌자면 ‘굳이 (출연해야 했나)’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잘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영화가 중요하지 제 역할의 크기나 주인공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전 진짜 그렇거든요. 그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한테 들어온 시나리오를 읽고 ‘하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시나리오는 사실 많지 않아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테두리 안에서 선택을 해야 하고, 매니지먼트도 있고, 때로는 계산과 전략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전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마음이 끌리는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나 봐요. 그래서 다른 외적인 건 중요하지 않아요.”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원작인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조금 다르다. 소설의 내용을 기반으로 그 이후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전개해나가기도 한다. 공유가 맡은 남편 대현의 비중도 더 커졌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여러 관점으로 그려지면서 캐릭터도 선명해졌다. 그래서 공유는 소설보다는 시나리오만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털어놨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남성들의 이야기에도 대부분 공감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전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에 상당수 공감해요. 제가 공감을 못했다면 영화를 안 찍을 수도 있었겠죠. 같은 사회에서 살았다고 해도 세세하게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 입장에서 영화 속 이야기를 일반화하기 어렵고 그래서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전 공감했고 인정하는 부분이 많아요. 그렇지 않았으면 영화를 안 했을 수 있어요. 정서적인 측면에서 저를 더 건드린 건 가족과 엄마라는 키워드가 컸던 것 같아요.”
영화 속 대현은 좋은 남편으로 그려진다. 그렇다고 완벽한 건 아니다.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로 부족한 면을 가끔씩 드러낸다. 그렇다고 정말 현실에 있을 것 같은 남편이라고 하기엔 이상적인 면을 갖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공유는 그것이 영화에서 대현의 역할이었다고 설명했다.
“제가 대현의 입장이면 이 정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대현이 좋은 남편임에도 해맑게 도와주겠다고 얘기하는 장면이나, 밥 달라고 얘기하는 장면처럼 곳곳에 대현이 뭘 모르고 있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전 그게 대현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대현은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을 거예요. 나 정도면 좋은 남편이라고요. 좋은 사람이고, 이상적인 남편인 대현조차 모르고 있다는 게 영화적으로 표현될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만약 지금의 대현보다 무심하고 부족한 남편이었다가, 아내인 지영이 아픈 걸 알고 극적으로 좋은 남편으로 변신한다면 현실적이지 못한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랬으면 배우 공유도 역할에 소모됐겠죠.”
‘82년생 김지영’은 이제 2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어떤 반응이 나오더라도 평점 테러, 댓글 테러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공유는 관객들의 반응이 어떻든 받아들이겠다고 하면서도 “설렘 반 걱정 반”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영화를 찍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제가 시나리오를 읽고 느꼈던 것들이 영화로 잘 표현됐기 때문에 만족해요. ‘배우’, ‘남자’ 같은 걸 다 떼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전 영화를 보고 통렬함을 느꼈거든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라고 할까요. ‘잘했어’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게 제가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얘기기도 해요. 영화를 본 관객 분들이 어떤 얘기를 하든 전 겸허하게 다 들을 생각이에요. 물론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어?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네’라고 생각해주시면 기쁠 것 같아요. 그걸 제일 바라기도 하고요. 결과와 상관없이 ‘82년생 김지영’을 찍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