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다 / 깊은 수렁에 …(중략)… 네가 바라던 따스함이 / 여기 가득 찼네” (김훨 ‘은’ 中)
친구를 먼저 떠나보낸 이의 마음은 어떨까. 20세 싱어송라이터 김훨은 일찍 세상을 떠난 친구 ‘은이’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첫 정규음반 ‘초심’(初心)의 수록곡 ‘은’은 이런 마음을 표현한 노래다. 김훨은 지난해 열린 ‘제29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이 곡을 출품해 은상을 받았다.
“‘은’은 부르는 게 너무 힘들었던 노래에요. 너무 힘들어서,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였죠.” 최근 서울 성미산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훨은 이렇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감정이 끓어올라 녹음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울음을 참느라 처음 두 번의 녹음에 ‘실패’했는데, 정작 음반에 실은 건 눈물을 흘리며 부른 세 번째 녹음본이었다. 김훨은 “노래를 많이 부르다 보면 감정도 닳기 마련이라, 감정을 정제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클래식 기타를 전공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김훨은 일찍부터 음악에 발을 들였다. 그가 처음 공부했던 분야는 재즈 피아노였다.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해 입시를 준비하던 그는 ‘대학교에 일찍 입학하겠다’는 생각으로 자퇴를 결심했다. 그런데 학교를 떠나 스스로를 돌아보니, 자신이 피아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란다. 김훨은 ‘대학에 가려면 노래라도 해야겠다’ 싶어 싱어송라이팅으로 전공을 바꿨다. 그리고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유명한 호원대학교 실용음악학부에 ‘덜컥’ “붙어버렸다.”
그런데 대학 입학 후 김훨은 슬럼프라는 수렁에 빠졌다. “다른 학생들은 간절히 원해서 음악을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어요.” 밤이 깊으면 지난날의 선택에 대한 후회도 함께 깊어졌다. 김훨은 마음속 어디에선가는 자신이 후회하는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 이유를 외면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 펜을 들었다. “나의 후회는 왜 / 언제나 다시 돌아오고 / 거짓말처럼 익숙한데 / 매번 마음은 짓무르나…” ‘초심’의 또 다른 수록곡 ‘후회’의 가사다.
“경험을 바탕으로 쓴 곡들이 많아요. 쓸 때는 마음이 힘들어도 (가사와 멜로디가) 잘 나오는데, 부르고 난 뒤엔 침울해지고 가라앉게 돼요. 그래서 관객들 앞에서 부르려면 마음의 준비가 많이 필요하죠. 노래를 낸다는 건, 남에게 제 고민을 들려준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그래서 발가벗겨지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사람들이 음악으로 저를 간파해서 삿대질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서, 제 얘기를 하는 게 힘들거나 어렵진 않아요.”
‘초심’은 김훨이 그간 작업해온 곡들을 모아 낸 음반이다. 최근 작업곡들은 사운드 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김훨은 “예전 작업곡들이 좀 더 대중적인 것 같다. 최근에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감정에 집중하고 천착해 음악을 만드는 편”이라고 했다. 3년 전, 밴드 혁오의 음악을 들으며 그들처럼 유명해지고 싶어 하던 ‘뮤지션 지망생’은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 삶을 유지”하길 바라는 ‘전업 뮤지션’이 됐다.
김훨의 음악은 맑고 깨끗하다. 간소한 악기 편성 때문이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라이너 노트에 “‘초심’은 단어 그대로 ‘첫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하얗고 깨끗한 처음의 그 마음. 김훨이 사람들에게 처음 건네는 그 목소리가, 마음이 바로 그렇다”고 썼다. ‘메시지’는 김훨의 음악을 이루는 중요한 재료다. 그는 “악기들이 많이 들어가면 멜로디와 가사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다”고 했다.
“제 음악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는 ‘심연’인 것 같아요. 혼자 깊게 생각해야 작업물도 나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곡을 쓸 땐 최대한 솔직해지려고 하죠. ‘초심’은 제 모든 것을 쥐어짠 음반이에요. 살면서, (듣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공감이 되길 바랍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