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초점] 유산슬이 된 유재석은 행복할까

[쿡초점] 유산슬이 된 유재석은 행복할까

유산슬이 된 유재석은 행복할까

기사승인 2019-12-19 07:00:00

모든 건 유재석의 입과 김태호 PD의 손에서 탄생했다. MBC ‘놀면 뭐하니’ 초반부에는 김태호 PD가 방송인 유재석을 인터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유재석이 전한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예능계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 인물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는 바람과 “날 괴롭혀줘”라며 유재석을 마음껏 활용하라는 부탁이었다. 이는 그동안 유재석이 추구해왔던 방향과 일치한다. 과거 MBC ‘무한도전’이 여섯, 혹은 일곱 멤버의 것이었다면, ‘놀면 뭐하니’는 유재석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프로그램이다. 유재석은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김태호 PD는 유재석의 의견을 충실히 프로그램에 반영했다. ‘놀면 뭐하니’는 다양한 소재, 장르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각자의 지인들에게 카메라를 건네는 ‘릴레이 카메라’부터 각자 지인들과 모여 신나게 노는 ‘조의 아파트’, 유재석이 친 드럼을 다양한 스타일의 곡으로 발전시키는 ‘유플래시’, 유재석이 신인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뽕포유’까지 모두 기존 예능에서 못 보던 얼굴을 찾아냈다. 유재석이 각 코너의 한 가운데에 서서 중심을 지키면, 그의 주변으로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는 방식이다. ‘놀면 뭐하니’는 새 인물들이 새로운 캐릭터를 획득해 가는 과정을 하나의 스토리로 능숙하게 풀어낸다. 초반부에는 방송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배우들이 주로 등장했고, ‘유플래시’에선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실력 있는 음악인들을 조명했다. ‘뽕포유’에서는 무명 트로트 가수들부터 작곡가, 작사가, 편곡가, 뮤직비디오 제작자, 매니저 등 업계에 숨어있던 신선한 얼굴을 발굴했다. 나중엔 유재석이 라면을 끓여주며 만나는 일반인들을 등장시키기까지 했다.

‘새 얼굴 찾기’ 미션이 프로그램의 기본 골격을 만들어준다면, ‘유재석 괴롭히기’는 웃음을 담당한다. 김태호 PD는 의도적으로 유재석을 끊임없이 낯선 환경에 노출시킨다. 첫 회 첫 장면에서 유재석에게 무작정 카메라를 건네주는 것을 시작으로, 김 PD는 매번 유재석을 아무 맥락없이 툭 던져놓는다. 유재석은 자신이 왜 드럼을 쳐야 하는지 모르면서 드럼 연습에 몰두하고, 정말 트로트 영재가 맞는지 의심하면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른다. 유재석의 당황스러움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무한도전’ 때처럼 김태호 PD를 찾으며 화를 내기도 한다. 결국 유재석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심지어 나중엔 기대했던 수준 이상으로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영재 맞네요”라며 깐족대는 김태호 PD에게 유재석은 부글부글 끓는 모습을 보여줄 뿐 화를 내지 못한다.

회를 거듭할수록 유재석은 유재석이 아니게 된다. 유재석은 매회 “사실 제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드럼을 치는 것도, 트로트를 부르는 것도 사실 그의 의사가 아니다. 유재석은 낯선 상황에 처하면 자신이 지금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적응하는 시간을 거친다. 카메라가 있어서 일단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김태호 PD가 자신을 인형처럼 조종하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방송에서 보지 못했던 유재석을 보여준다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그램은 점점 유재석을 지우고 ‘드럼 신동’과 ‘유산슬’이라는 그의 두 번째 캐릭터를 내세운다.

캐릭터 전쟁이 되어버린 예능계에서 매번 새로운 캐릭터의 옷을 입는 건 유재석에게 축복이다. 유명 연예인 유재석이 아닌 드럼 신동이었기에 뮤지션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었기에 각종 라디오와 KBS ‘아침마당’,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하며 방송국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동시에 시청자들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내는 연예인을 보며 웃고 열광하게 됐다. 아무것도 모르고 등장한 유재석이 당황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웃긴 상황으로 그려진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을 권하는 출연자들은 본업이 이게 아니라고 하는 유재석의 말을 듣지 않는다. 유산슬이 된 유재석은 정말 행복할까.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