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들 저 보러 오신 거 맞나요.”
어색하게 무대에 오른 가수 양준일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팬 미팅 직전 개최한 기자간담회지만 3~5명 정도 올 거라 생각했던 수십 명의 기자들의 모습에 놀란 표정이었다. 자신을 왜 보러왔냐고 되묻기도 했다.
1991년 데뷔한 20대 양준일이 2019년 50대 양준일이 되어 대한민국을 다시 찾았다. 미국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하루 14시간씩 식당 서빙을 하던 양준일은 이제 대규모 팬 미팅을 개최할 정도로 유명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31일 오후 1시 서울 능동로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양준일은 “머릿속에 있는 내 이미지가 아직 헷갈리는 상태”라며 “일주일 전만해도 서빙을 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저를 보러왔다는 것 자체가 믿겨지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슈가맨 3’ 녹화를 하고 돌아온 다음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 모르는 상태였어요. 제가 일하는 음식점에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어떤 분이 전화해서 양준일씨가 일하는 음식점이 맞냐고 바꿔달라고 하는 거예요. 나중엔 전화를 받던 친구가 ‘대한민국에 난리가 났는데 서빙을 하면 어떻게 해’라고 짜증을 내더라고요. 그래도 저한테 잘 와 닿지 않았는데 귀국 비행기에서 청소하시는 분들까지 절 알아보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이지. 매일 적응하고 있지만, 지금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를 보러 왔다는 것 자체에서 또 충격을 받고 있어요.”
양준일이 ‘슈가맨 3’에서 20대의 양준일에게 하고 싶은 말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그는 방송에서 “네 뜻대로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알아. 하지만 걱정하지 마. 모든 것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게 될 수밖에 없어”라고 말했다. 양준일은 그 말이 ‘완벽’에 대한 내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들이란 의미였다고 부연했다. 다시 무대에 선 50대의 양준일은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려고 했다.
“언제나 저는 현실에 무릎을 꿇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제가 다시 방송에 나와서 여러분이 실망하고 필요없다고 하면 제가 그걸 받아들여야죠. 안 좋은 반응이 와서 다시 무대에 설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것도 받아들여야 되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걱정한대로 되지 않고 반대로 이뤄졌어요. 모든 게 내 계획대로 안 돼요. 20대도, 50대도 내 계획대로 안 되고 있어요. 원하지 않으니까 이뤄진다는 게 신기해요.”
양준일은 조건이 되는 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음반 활동을 포기한 이후에도 가정집에 공부방을 열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것도 한국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현재는 자신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들을 궁금해 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거 발표했던 곡들을 재편곡한 음반 발매도 준비 중이다. 그도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눈치였다.
어떻게든 앨범을 하나라도 더 발표하려고 했던 과거의 양준일이 아닌, 어떤 일이 생기든 받아들이는 양준일이 우리 눈앞에 서 있었다. 그가 앞으로 어떤 양준일이 될까. 분명한 건 그가 대중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타고난 아티스트라는 점이었다.
“제 매력이 뭔지를 제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아요. 왜냐면 제가 감히 그것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만약 파악하려고 하면 고정된 형식에 갇힐 것 같아요. 그러면 또 그것을 깨는 형식을 생각할 것 같고요. 전 오히려 여러분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왜 저를 보러오셨죠.”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 tina@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