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로 시작해서 드라마로 끝난다. 초반부 강렬했던 영화 ‘클로젯’(감독 김광빈)의 인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흐려진다. 플롯과 주제의식에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담을 그릇을 잘못 선택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서늘한 공포와 따스한 드라마의 만남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보여줬는지 알 수 없다.
‘클로젯’은 두 가지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하나는 경훈(김남길)의 어머니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교외 이층집으로 이사가는 상원(하정우)과 이나(허율)의 이야기다. 무당이었던 경훈 어머니의 이야기는 섬뜩하다. 오래된 비디오카메라로 촬영된 것 같은 옛날 영상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순간, 영화가 생각보다 무서울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는 기분이 든다. 상훈의 이야기는 답답하다. 사고로 아내를 잃고 홀로 딸을 키우는 건축설계사 상원은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새집에서 조금 이상해진 이나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서 그의 삶이 달라진다. 한 달이 지나도록 딸의 흔적을 찾지 못하는 상훈에게 오랜 시간 벽장의 비밀을 좇는 경훈이 나타나며 두 이야기가 만난다.
‘클로젯’은 장르의 국적을 찾기 어렵게 설계된 영화다. 동양적인 소재인 무속신앙과 서양적인 소재인 벽장에서 시작하는 무서움이 극대화됐다. 관객들은 익숙한 공포영화의 규칙을 ‘클로젯’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퇴마를 다루는 온갖 영화들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지만 무엇하나 도움이 되진 않는다. 대신 새로운 백지 상태에서 영화가 재정립한 규칙을 하나씩 입력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매며 이야기의 끈을 잡고 따라가게 된다.
기존 공포영화들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서는 후반부의 과감한 전개는 ‘클로젯’이 매력적일 수 있는 큰 이유다. 관습이 반복되는 장르 영화에서 예상을 깨는 전개를 만나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어디서 본 것 같은 수많은 레퍼런스가 떠오르면서도 ‘클로젯’ 만의 독자성을 가질 수 있는 힘은 이 같은 이야기 구조에서 나온다. 또 영화가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공익광고에 그칠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솔직하고 친절한 태도가 호감을 이끌어내는 경우도 많지만 ‘클로젯’의 경우는 반대다. 영화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의 진실을 너무 쉽게 보여준다. 진실을 모르는 상훈과 관객의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정확하게 집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준다. 이는 영화가 공포에서 드라마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무서운 일을 벌이는 미지의 존재와 거리감을 둬야 하는 공포와 누군가의 사연을 조금씩 들려주는 휴먼 드라마가 왜 같은 공간에 있기 어려운지 입증한다. 진실이 드러날수록 영화의 메시지는 선명해지고 잘 쌓아온 장르적 매력은 소멸한다. 러닝 타임 98분에 환호할 관객이 많겠지만, ‘드러나지 않은’ 편집된 이야기들을 궁금해 할 관객 역시 많지 않을까. 15세 관람가. 다음달 5일 개봉.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