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그 장면은 꼭 하고 싶었어요”

[쿠키인터뷰]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그 장면은 꼭 하고 싶었어요”

장유정 감독 “그 장면은 꼭 하고 싶었어요”

기사승인 2020-02-18 07:00:00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영화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의 이력은 화려하다.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 뮤지컬 연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자신이 쓴 원작을 영화화한 영화 ‘김종욱 찾기’, ‘부라더’를 연출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선 개·폐회식 부감독 겸 폐회식 총연출까지 맡았다. 다방면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의 발길은 이번엔 정치로 향했다. 한국 정치 상황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웃기는 풍자 코미디 영화에 도전한 것. 지난 12일 개봉한 ‘정직한 후보’가 그 결과물이다.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을 일삼던 국회의원 주상숙에게 갑자기 진실만 말하게 되는 마법 같은 상황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동명의 브라질 원작을 한국 상황에 맞게 바꿨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장유정 감독은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나게 된 순간부터, 정치인들의 취재과정과 추구하려고 했던 코미디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시사회에 초대한 정치인들의 자리 배치를 가로가 아닌 세로로 해야 했던 에피소드엔 웃음이 터졌고, 주상숙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장면을 꼭 넣고 싶었던 이유를 말할 땐 고개가 끄덕여졌다. 영화감독 장유정과 나눈 ‘정직한 후보’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해봤다.

(다음 인터뷰에는 ‘정직한 후보’ 스포일러 일부가 포함돼 있습니다.)


- 감독님과 ‘정직한 후보’의 첫 만남이 궁금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품인가요.

△ “정식적으로 제의를 받은 게 아니었어요. 시사성 있는 작품이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다닐 때 홍필름(‘정직한 후보’ 제작사) 쪽에서 작품 의뢰를 했어요. 처음엔 다른 작품을 고사했고, 얼마 후에 영화 ‘부라더’ 코멘터리 녹음하려고 모였다가 저녁을 먹고 홍필름 대표님과 커피를 마시러 갔죠. 다음 작품에 관한 얘길 하다가 ‘정치인이 있다’, ‘거짓말을 못한다’, ‘브라질 원작’이라는 세 가지에 혹한 거예요. ‘재밌을 것 같은데?’ 싶었죠. 정치인이 진실만 얘기하면 무슨 말을 쏟아낼까, 관련된 사람들은 얼마나 등골이 오싹하고 당황스러울까 싶었어요. 자기 의지로 되는 게 아니니까 스스로도 굉장히 황당할 거잖아요. 이거들이 버무려지면 재밌는 풍자코미디가 만들어 지겠다고 생각했고 10분 만에 결정했어요.”


- ‘정직한 후보’는 예상했던 뻔한 코미디와 조금 달랐어요.

△ “장르에는 전형적인 설정들이 있잖아요. 로맨틱 코미디는 사랑에 빠지기 전에 투닥거리고 위기를 겪는 장르적 법칙이 있어요. 어두운 상황에서 열심히 위기를 극복해서 잘된다는 성장담도 마찬가지고요. 전형적 플롯들이 있긴 하지만 에피소드에 따라서 작품의 재미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캐릭터들이 부딪히면서 생겨나는 갈등과 긴장감이 있잖아요. ‘정직한 후보’는 각종 웃음이 섞인 통쾌한 코미디를 만들고 싶었어요. 한국의 정치적 실정을 잘 녹여내서 자연스럽게 웃기고, 기가차서 웃기고, 웬일이야 싶어서 웃기는 식이죠. 배우 혼자서 너무 애를 쓰지 않아도 되는 코미디를 하고 싶었어요. 풍자의 대상이 정치인이긴 하지만, 그 주변에 있는 분들을 풍자하는 식이었죠.”


- 실제 정치인들 취재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 “실제로 인터뷰를 하니까 재밌는 게 많았어요. 7개 정당을 모두 만났죠. 처음엔 보좌관들을 많이 만났고, 비서관과 대변인, 전 의원과 현 의원, 초선 의원과 3선 의원 등 계속 인터뷰를 했어요. 창원·성산 보궐 선거 때 이 캠프, 저 캠프를 다니면서 관찰할 기회가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탄탄하게 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죠.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엔 심각하다고 생각했는데, 틀어보면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분노가 치밀겠지만, 유머와 조크를 갖고 아울러서 풍자를 하는 방식으로 하면 더 많은 걸 넣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제 시선도 담겼겠지만 특정 정당을 비하하려고 만든 작품은 아니에요. 정치인과 그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 정당들의 특징이 저한테는 재밌게 읽혔고, 그것이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정직해서 생기는 문제와 잘 연동됐던 것 같아요.”


- 그분들도 영화를 보셨나요?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 “시사회 때 불렀어요. 보통 극장에 가로 열로 표를 주는데 이번엔 세로로 했어요. 당의 각 대변인과 전 의원 분들이 극장에 앉아 계시는데 엄청 신경 썼어요. 뒤돌아보면 한 분은 후보였고, 다른 한 분은 당선된 분이었고 그런 식이었거든요. 취재에 응해주셨던 분들이 나중에 재밌게 봤다며 보내주신 메시지들이 힘이 됐죠.”


- 한국 정치를 소재로 다루는 게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 “함부로 할 수 없었어요. 이건 나에게 이런 의미를 주는 지점이라고 얘기하진 못했죠. 그래도 꼭 하고 싶었던 장면이 있었어요. 주상숙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장면이에요. 그 장면은 위정자들이 정치적 액션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나 기자들 모아놓고 유감을 표명하는 정치적 사과와는 달랐어요. 정말 인간 대 인간으로 한 거죠. 자신의 과거 행동으로 고통 받은 사람에게 통감하고 진심을 다해 사죄하는 장면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주상숙이 직접적이지 않아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죄가 있는 거잖아요. 그는 일반인이 아니니까요. 한 명은 고개를 숙이고 한 명은 바라보는 아주 순수한 얼굴의 모습을 사진처럼 담고 싶었어요. 공을 많이 들인 장면이에요.”


- 정치 코미디를 연출하는 데에도 공을 많이 들였을 것 같아요.

△ “초반에 사실적인 연기를 많이 요구했어요. 설정은 판타지적이지만 그 외는 리얼리티로 했죠. 라미란 배우와 김무열 배우에게 제가 만난 보좌관과 의원들 얘길 많이 해줬어요. 매번 얘기하면 피곤할 수 있으니까 초반에 얘길 많이 했어요. 내가 봤을 때 그분들은 이랬고, 우리 영화의 코미디 톤은 이 정도라는 식으로요. 원작은 주인공이 거짓말을 못할 때 얼굴이 막 바뀌는 걸 보여줘요. 저희는 그런 거 없이 하는 식이었어요. 세 명의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어쩔 수 없는 변수였어요. 대신 캐릭터만큼은 제가 생각하는 것을 배우들에게 항상 얘기해줬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전 생각이 다르다고 하면서 한 번만 내가 원하는 대로 찍어보자고 하는 식으로요.”


- 라미란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원작에서 남자였던 주인공을 여자로 바꿀 정도로 공을 들이셨어요. 실제로 함께 작업해본 라미란은 어떤 배우였나요.

△ “주상순과는 상반된 캐릭터 같아요. 주상숙은 짜증도 내고 나이브한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라미란 배우님은 실제로 차분하시고 이야기 많이 들어주세요.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늘 고민하시고 남에게 강요하는 것 싫어하시는 분이시죠.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뜻하게 챙겨요. 그래서 배우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지금도 ‘끝나고 밥이나 먹을까’ 하고 연락하고 있어요. 촬영하면서 편안함을 느꼈고 좋은 배우시죠. 제가 복이 많아요.” 


- 라미란 배우가 인터뷰 도중 감독님과 코미디 취향이 다르다는 얘기도 했어요. 그래서 서로가 생각하는 다른 코미디 버전으로 여러 번 찍었다고요.

△ “저희가 다 찍고 나온 현장 편집본이 2시간 정도였어요. 지금 영화는 1시간44분으로 나왔고요. 실제론 콤팩트하게 찍은 거예요. 여기저기 많이 뛰어다녀야 했지만, 그 안에서 다양하게 다 찍었거든요. 배우가 놀 수 있도록 준비는 최대한 해놓고요. 테이크를 열개 넘게 가지도 않았어요.”


- 감독님이 처음에 시사적인 영화를 찍고 싶어 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 “제가 뉴스 좋아해서 그런 것 같아요. 새로운 뉴스 보는 걸 좋아하고 신문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래서 언론대학원도 갔어요. 기자가 된 친구들도 저도 아마 영화 쪽을 안 했으면 기자 쪽에 관심을 많이 가졌을 것 같아요. 취재가 재밌어서 시사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취재를 해보면 각도에 따라 양상이 다르게 보이잖아요. 이렇게 보이기도 하고, 저렇게 보이기도 하고요. 누군가는 시사성 있는 대단한 작품을 만들겠죠. 점점 다양성이 넓어질수록 관객들도 다양한 것들을 고를 수 있으니까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만드는 사람들도 코미디는 이것만 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에서 조금 더 벗어날 거고요. 예술의 궁극적인 의미 중 하나가 살아보지 못한 삶 살아보게 하고 이해할 수 있게 폭을 넓히는 거잖아요.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장르가 넘쳐나는 게 고무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관객들이 ‘정직한 후보’를 어떻게 보면 좋을 것 같으세요.

△ “전 내려놨어요. 이제부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어요. 관객들에겐 세상사는 게 참 팍팍하고 정치적 피로도도 높잖아요.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이 있으니까 화도 나고요. ‘정직한 후보’를 보면서 억눌린 것들을 시원하게 터뜨려주는 통쾌한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웃기긴 웃겼는데 웃픈것도 있었구나’, ‘날카로운 지점도 있었구나’ 하고 살짝 돌아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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