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생각해보면 슈퍼맨과 배트맨은 외로웠다. 슈퍼히어로의 아버지 격인 그들은 자주 남들과 자신이 왜 다른지 같은 고민에 빠지기 바빴다. 자신의 힘을 쓰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화려한 액션보다 대화하는 장면이 더 많았다. 어떻게 보면 그들은 가진 힘에 비해 많은 걸 누리지 못했다. 그 덕분에 대중에게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라고 생각할 여지를 열어주기도 했다.
세대가 바뀌면서 히어로도 진화를 거듭했다. 최근 마블 시리즈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빠르게 깨닫는다. 고민은 내부가 아닌 외부로 향한다. 이젠 자신이 가진 힘을 어떻게 쓰는 것이 올바른지가 중요해졌다. 더 나아가 스스로 느끼기에만 올바른지, 남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른 히어로는 어떻게 사는지, 일반인들과 함께 공생할 방법은 없는지, 은퇴 이후엔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까지 나아갔다. 이 같은 진화는 히어로와 대중의 거리를 좁혔다. 마치 마블의 영웅들이 우리 근처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넷플릭스 ‘아이 엠 낫 오케이’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17세의 백인 여성인 주인공 시드니(소피아 릴리스)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초능력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아빠의 죽음과 절친한 친구 디나(소피아 브라이언트)에 대한 감정, 자신을 좋아하는 스탠리(와어엇 올레프)와의 관계 등 초능력이 아니라도 이미 시드니의 상황은 충분히 복잡하다. 혼란 속에서 시드니는 자신이 누구인지 질문하고 답을 찾아나간다.
‘아이 엠 낫 오케이’는 평범한 시드니로 살고 싶은 평범하지 않은 시드니의 이야기다. 시드니에게 초능력은 축복이 아니다. 오히려 저주에 가깝다. 남들과 다른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시드니는 차라리 초능력이 가짜이고 환각이길 바란다. 처음엔 신기해하다가도 조절되지 않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힘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입을까 하는 걱정도 크다.
10대 소녀의 성 정체성 고민을 담은 청춘물이기도 하다. 시드니는 1회에서 자신을 평범한 학생으로 소개하지만, 스스로는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남들과 자신이 무엇이 다른지 몰라 헤매던 시드니는 두 가지를 동시에 발견한다. 그의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자꾸 화가 나게 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고민하느라 더 상태가 나빠진다.
‘아이 엠 낫 오케이’는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좋아했던 작품의 장르와 색깔들을 뒤섞어 탄생한 돌연변이처럼 보인다. ‘빌어먹을 세상따위’, ‘오티스의 비밀상담소’처럼 시대 배경을 알 수 없는 작은 마을 이야기를 다룬 빛바랜 영국드라마 느낌도 있고, ‘기묘한 이야기’처럼 10대 소년 소녀가 겪는 거짓말 같은 사건이 현실 세계로 확대되는 미스터리 장르 느낌도 있다. 20분 정도 분량의 짧은 에피소드 7개로 한 시즌을 완결하며 최근 트렌드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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