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 현행법으로는 이른바 'n번방' 운영자와 회원에 대한 엄중 처벌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로 n번방 사건은 신종 ‘디지털 성착취 범죄’로, ‘박사’라는 닉네임을 사용한 조주빈을 비롯 ‘갓갓’, ‘와치맨’ 등 n번방 운영자들은 피해자를 협박해 촬영한 불법영상물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돈을 받고 공유했다. 60여개에 달하는 n번방에는 중복 인원 포함 26만명이 입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74명이며, 이 가운데 16명은 미성년자다.
관련해 지난 5일 국회를 통과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 일부 개정안은 ‘n번방 방지법’과 ‘국민청원 1호법’으로 불렸다. 1월15일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첫 청원으로 올라온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 10만명의 동의를 얻은 것을 계기로 법개정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개정안의 뚜껑을 열어보면, 청원자의 간절한 요구는 반영되지 않아 있다. 개정안 속 디지털 성범죄는 '특정 인물의 신체 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등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해 제작·반포하는 행위‘인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자를 처벌하고, 이를 영리 목적으로 반포한 자는 가중처벌하는 것으로 제한돼 있다. 당초 청원의 요구사항은 ▲경찰 국제공조수사 근거 마련 ▲수사기관 내 디지털성범죄전담부서 신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강화 등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처벌과 예방 수단 마련 등이었다.
때문에 개정법으로는 n번방 가해자에 대한 엄벌이 요원하다. 영상물 제작·유포·소지를 모두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포함돼 있는데, 이 조항을 적용하려면 음란물에 등장하는 대상이 미성년자여야만 한다. n번방 피해자의 상당수가 성인이라는 점과 텔레그램에서는 영상물을 다운로드하지 않고, 스트리밍 재생만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은 법의 적용을 어렵게 한다. 이 경우 제작·유포·소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불법 촬영물 반포 등의 혐의도 n번방 운영자들의 범행을 포괄하기 부족하다. n번방 운영자들은 피해자가 영상물을 스스로 촬영·전송하도록 협박했지만, 직접 촬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n번방 운영자들의 범죄 요건을 입증하기는 까다로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경찰이 조주빈에게 적용한 혐의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아동·음란물 제작 ▲형법상 강제추행·협박·강요·사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성폭력처벌법 위반 등이다.
이하영 텔레그램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는 “n번방 방지법은 유명무실하고, 사건 재발방지 수단은 아직도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행법은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때와 성인일 때를 구분해서 보호한다”며 “영상물을 유포하는 것은 처벌할 수 있어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n번방 운영자와 유료회원은 불특정 다수인데, 이 사건에 집단성폭력 가중처벌을 적용할 법적 근거도 없다”고 강조했다.
올해 업무 목표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약속한 여성가족부는 “조금 더 기다려 달라”는 입장이다. 여가부 권익지원과 관계자는 “디지털성범죄 처벌 강화와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코자 민·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면서도 “구체적인 활동 계획, 법률 개정안 마련 시점·개정 방향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참고로 n번방 사건이 최초 보도된 시기는 지난해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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