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핫펠트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쿠키인터뷰] 핫펠트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기사승인 2020-04-23 08:00:00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삶은 끔찍해’(Life Sucks). 싱어송라이터 핫펠트가 23일 발표하는 정규음반 ‘1719’의 첫 곡 제목이자, 음반과 함께 낸 스토리북의 첫 챕터 제목이다. 핫펠트는 아버지와의 오랜 불화를 고백하는 것으로 음반과 책을 시작한다. 그는 2018년 목사인 아버지 박모씨가 사기혐의로 피소되자 언론에 가정사를 털어놓은 바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끔찍한 것. 난 미치기 일보 직전인 채로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갈 뿐이야(I'm just surviving everyday right at the edge of losing my mind).” 예은은 ‘라이프 석스’(Life Sucks)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사연은 제각기 다를지라도 한국의 많은 여성들이 핫펠트와 비슷한 굴곡을 지났으리라 생각한다. 가부장제가 통치하는 사회에서 아버지를 향한 딸들의 마음은 최소 애증일 것이다. 한편 소년들이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cious)라고 응원받을 때, 소녀들은 겸양과 헌신을 체화해야 했다. 예은의 새 음반과 책 ‘1917’은 이렇게 길러진 딸이자 소녀가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거쳐온 투쟁을 보여준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많이 공감하실 것 같다”는 핫펠트의 말에 고개가 크게 끄덕여진 이유다.

음반과 책의 공개를 앞두고 서울 월드컵로14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핫펠트는 “굉장히 설레고 벅차다”고 말했다. 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마침내 세상을 마주한 이의 감격이었다. 2007년 그룹 원더걸스의 멤버로 데뷔해 벌써 13년째 활동하고 있는 그는 “그동안 낸 그 어떤 음반보다 가장 긴 시간을 들여 작업했던 음반”이라면서 “특히 책을 쓰면서는 새치만 너다섯개를 뽑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1719’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겪은 감정과 생각을 음악과 글로 풀어낸 묶음집이에요. 사랑·꿈·일상·이별·가족·여성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죠. JYP엔터테인먼트를 나와 아메바컬쳐로 옮긴 게 2017년 초였는데, 그 이후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거든요. 방황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던 시기였어요. 17세에서 19세까지, 성인이 되기 직전의 사춘기를 닮은 음반이에요.” 

번 아웃 증후군이었을까. 핫펠트는 한 때 “사는 것에 흥미가 떨어졌다”고 했다. 지리한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대길 1년여. 핫펠트는 매주 수요일 만나던 심리상담 전문가에게 ‘글을 써보라’는 조언을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이었다면, 타인과 글을 나누는 것은 각기 다른 상처와 경험을 공유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쌓인 공감대에서 용기를 얻은 핫펠트는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보이기로 결심했다.

책에 실린 ‘블루비 이야기’는 핫펠트가 자신을 투영해 쓴 짧은 동화다. 주인공은 파란 새. 비닐하우스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이 주변의 존재들처럼 꽃이길 바랐다가, 벌이길 바랐다가, 마침내 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핫펠트는 “어떤 집단 안에 있다보면, 내가 그 집단에 맞춰져야 할 것 같고 때론 나만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라면서 “결국은 나를 찾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다양한 존재가 다양한 이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풀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불특정 다수의 호감을 얻어야 하는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자아는 때로 숨겨야 할 무언가가 된다. 냉엄한 잣대가 적용되는 여성 아이돌의 세계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핫펠트는 자신을 재단하는 ‘걸그룹’이라는 기준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원더걸스 예은’이 아닌 ‘핫펠트’로 스스로를 이름 지었다. ‘마음에서 느껴지는’이라는 ‘허트 펠트’(heartfelt)에 ‘뜨거운’을 뜻하는 ‘핫’(hot)을 더해 만든 이름이다. 그는 “‘내 음악을 내가 듣고 싶은가’가 만족의 기준”이라며 “지금까지는 내가 해온 음악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핫펠트는 데뷔 초 소속사 대표 프로듀서인 박진영으로부터 ‘너는 흰색과 검은색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뒤섞여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곤 스스로를 괴물처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밝음과 어두움이 만들어 내는 얼룩을 받아들이기로, 온통 얼룩인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의 곁엔 그를 응원하는 가족과 친구, 익명의 지지자들이 있다. 식당이나 비행기처럼 의외의 장소에서 받은 쪽지와 응원의 말들은 핫펠트를 지탱해주는 또 다른 힘이다.

“예전에는 저 자신을 향한 기준이 엄격했어요. 흠 잡히지 않으려는 삶을 살았죠. 그런데 지난 2년을 보내면서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드러내는 것이 창피하거나 수치스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요. 저는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어요. 한계를 두지 않고, 경계 없이 음악 안에서 뛰어놀면서요.”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