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여러모로 아쉽다. 영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은 현재 청년세대를 바라보는 감독의 짧고 명확한 메시지를 추격 스릴러 장르로 풀어냈다. 하지만 내용과 외피의 화학작용이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하고 은유와 상징을 이용한 장르 실험극이 됐다. 배우들의 연기부터 미장센, 음악 등은 예쁘고 훌륭하지만 빛이 바랬다.
‘사냥의 시간’은 두 겹으로 둘러싸인 지옥도에 갇힌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경제적 상황이 악화돼 슬럼화 된 대한민국을 탈출하려는 준석(이제훈)과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 세 친구의 어설픈 계획이 출발점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를 저질렀지만 결국 더 지옥 같은 수렁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한(박해수)이 만든 사냥터에 갇혀 처참한 결과를 맞는다. 이중의 지옥 안에서도 청년들은 ‘낙원’ 같은 새로운 세계로의 탈출을 꿈꾸고 서로를 위로한다.
위로 올라가려는 청년들은 자꾸만 아래로 미끄러진다. 정보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주인공들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전후 사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반대로 영화에 등장하는 기성세대들은 다들 어떤 상황인지 대충 이해하는 눈치다. 마음만 먹으면 더 많은 정보를 구하고 어떻게든 살아나갈 능력도 갖췄다. 세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정보가 많았다면, 불확실한 꿈을 꾸고 어설픈 범죄를 계획하고 킬러에게 쫓기면서 여유를 부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인물들 위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관객 입장에선 답답한 일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신이 된 것처럼 중립적 위치에서 모든 일을 지켜본다. 영화는 주인공 입장의 1인칭 시점이 아닌 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그린다. 덕분에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뚫고 성장해 승리하는 서사 대신 강자와 약자의 대결을 심판처럼 지켜보게 된다. 저지른 범죄에 비해 지나친 벌을 받는 약자가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만 두 시간 동안 헤매고 쫓기기만 하는 무력한 주인공에게 이입하기 어려운 건 그래서다. 또 이야기의 전후과정을 설명하는 힌트가 관객에게만 무작위로 공개돼 하나씩 비밀이 풀리는 장르적 재미도 느끼기 힘들다. 그렇다고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영화를 볼수록 관객보다 더 높은 곳에 판을 짜놓은 감독의 시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어정쩡한 구도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실망감은 더 커진다. 청년이 아닌 감독이 청년 세대를 다룬 영화가 선택하는 악수(惡手)를 ‘사냥의 시간’도 피하지 못했다. 청년들의 힘든 사정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나름의 대안 제시로 풀어내는 건 이미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지옥의 또 다른 버전을 보여주는 것밖에 안 된다.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메시지가 주는 허탈함은 영화에 대한 감상을 더 나쁘게 한다. 두 시간 동안 청년들을 볼모삼아 괴롭히는 영화보다 실패한 장르영화를 보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관객들은 어디서부터 무엇이 엇나갔는지 고민할 필요 없이 처음부터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혹평할 권한을 얻는다.
근미래 한국 세계관을 완성한 공간과 미술, 그 모든 걸 담아내는 촬영과 편집은 이대로 묻히기에 아까울 정도다. 누구 하나 아쉬움 없는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재미도 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겉치장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인 셈이 됐다. 지난 23일 넷플릭스 공개.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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