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청년들에게 남긴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의 메시지

[쿠키인터뷰] 청년들에게 남긴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의 메시지

청년들에게 남긴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의 메시지

기사승인 2020-05-05 07:00:00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좋은 말씀도 비판하는 말씀도 다 찾아보고 있어요. 워낙 영화가 공개되길 바라던 입장이었어서 공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고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달 23일 공개된 넷플릭스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은 배우만큼 감독의 그림자가 큰 영화다. 이제훈, 박정민, 최우식, 안재홍 등 현재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지만, 영화 ‘파수꾼’ 감독의 후속작이란 표현이 영화에 대해 더 많은 걸 설명해준다.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큰 사랑을 받았던 ‘파수꾼’ 이후 9년 만에 어떤 신작을 내놓았을지 궁금해하는 반응이 대부분일 정도였다.

윤성현 감독이 두 번째 작품을 발표하기까지 9년이란 긴 시간이 걸린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준비하던 작품이 너무 큰 규모인 바람에 다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촬영은 2018년에 끝마쳤지만, 후반 작업을 하며 적절한 개봉 시기를 기다렸다. 2020년 2월 개봉일을 잡았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다시 개봉을 미뤄야 했다. 최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윤 감독은 “지인들에게 ‘정신병 안 걸리고 잘 버틴다’는 얘길 들을 정도로 많은 일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사냥의 시간’은 윤성현 감독의 전작 ‘파수꾼’과 닮은 듯하면서 다른 영화였다. 근미래 한국을 배경으로 꿈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짜는 네 명의 20대 청년 이야기를 그렸다.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벌어지는 케이퍼 무비 같았다가 어느 순간 공포 스릴러로 바뀌었다. 각자의 스토리를 그린 드라마도, 청년들의 성장도 있다. 윤 감독은 ‘사냥의 시간’ 시나리오를 쓰게 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2016년에 처음 시나리오를 썼어요. 먼저 그 시기엔 한국 사회를 지옥에 빗댄 말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시각적으로 지옥은 아니었잖아요. 청년들이 생존에서 느끼는 감정과 사회적 박탈감을 정서적으로 표현하면서 지옥을 얘기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우화적으로 지옥 같은 세상을 시각화해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또 ‘파수꾼’은 대사와 내러티브 위주의 이야기였어요. 당시 시나리오를 보면 지문은 거의 없고 전부 대사예요. 2016년 전까지 썼던 내용도 드라마라서 반대급부의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영화에 대사나 배우만 있는 게 아니라 미술이나 사운드 등을 복합적으로 활용하고 싶었죠. 제 개인적 생각과 사회적 관점,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서 지금 같은 장르의 형태로 기획되지 않았나 싶어요.”

‘사냥의 시간’에 등장하는 20대 청년들의 모습은 마치 ‘파수꾼’의 고등학생들의 미래처럼 보이기도 한다. 윤 감독은 두 작품 연속으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의도한 건 아니다”라면서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다”고 털어놨다. 1992년 개봉한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아야 할 영화로 꼽은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사냥의 시간’에는 그가 청년세대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도 담겼다.

“키워드로 생각했던 건 생존과 돈이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느끼는 청년들의 절박함을 영화적인 형태로 구현한 거죠. 그 감정들의 기저에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이 큰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료조사를 했을 때 많은 청년들이 어떤 형태로든 탈출하고 싶어했어요.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죠. 그 욕망을 영화 내내 보여줘요. 그리고 그들은 생존 문제가 돈과 직결됐다고 볼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거든요. 저 너머에 그들이 보지 못한 세상이 있고,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부분이 존재하죠. 그런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벗어나고 싶은 청년들에게 벗어나는 게 다가 아니라는 얘길해주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희생되고 누군가는 싸울 텐데 변화를 줘야 하지 않을까,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있었거든요.”

‘사냥의 시간’은 영화 미술의 비중이 큰 작품이다. 감독의 말처럼 특별한 설명 없이 공간이 주는 힘으로 관객을 설득해내는 힘이 있다. 인물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없었는지를 상당 부분 미장센으로 설명해낸다.

“어떻게 하면 지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SF 장르의 영화는 아니지만,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져와서 지옥도를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현실과 괴리가 큰 지옥이 아니라 현실에서 근접한 느낌의 지옥 이미지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해서 슬럼화된 형태를 떠올렸어요. 해외 사례를 많이 참고했어요. 프랑스 영화 ‘13구역’도 봤고, 남미나 유럽과 미국의 슬럼화된 도시 이미지를 참고했어요. 콘크리트만 남은 느낌, 버려진 삭막한 사막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빈민가와 경제가 붕괴 된 실제 이미지를 많이 참고해서 지금의 질감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사냥의 시간’은 공개 이후 호평보다 많은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감독 역시 지금의 반응을 알고 있고,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태도로 받아들였다. ‘사냥의 시간’이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한 내러티브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대사 중심이거나 드라마가 있거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러티브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냥의 시간’ 만큼은 대사가 없더라도 영화적인 본질로서 그리고 싶었죠. 글로 쓰면 잘 모르겠지만, 영화로 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시청각적인 부분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드니까 내러티브에 익숙하신 분들에겐 낯설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영화 ‘1917’, ‘레버넌트’도 반전이 있거나 큰 이야기가 아니지만 외국영화라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한국영화는 상황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거의 없잖아요. 부정적인 반응들도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하고 경청해서 듣고 있어요. 하지만 개인적인 바람은 아이들이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물들의 입장을 따라가고 응원해주는 마음이었으면 해요. 그러면 순간순간을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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