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심심하지만 곱씹게 되는 맛이다. 영화 ‘해피 해피 레스토랑’(감독 후키가와 요시히로)에는 토마토를 재배하는 한 농부의 사연이 등장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이전과 똑같이 모든 일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농부는 토마토를 방치했다. 토마토는 쉽게 죽지 않았다. 농약이나 비료 없이도 잡초와 싸워 이겨낸 자연농법 토마토는 훨씬 좋은 맛을 낸다. ‘해피 해피 레스토랑’도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영화에 가깝다. 일본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몇몇 인물들의 사연만으로 완성된 형태의 영화가 됐다. 사람의 손이 깃든 영화와 다른 맛이다.
‘해피 해피 레스토랑’은 눈보라가 옆으로 몰아치는 어느 겨울밤, 바다가 보이는 목장을 찾는 코토에(혼조 마나미)가 목장 주인인 와타루(오오이즈미 요)와 마주친 후 쓰러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0년이 지나 두 사람은 결혼해 예쁜 딸을 낳고 동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살아간다. 어느 날 와타루에게 치즈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 오타니(코히나타 후미요)가 세상을 떠나며 이들의 이야기는 새 국면으로 접어든다.
‘해피 해피 레스토랑’은 서두르지 않는다. 대단한 이야기를 꺼낼 야심은 처음부터 없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한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그린다. 그들의 일상은 주변 인물들로 조금씩 확대된다. 초반부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캐릭터 설명도 슬쩍 던져두는 식이다. 정작 영화의 매력은 그들이 지내는 환경과 음식에서 나온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인물들에서 시선을 조금 떼면 그림 같은 자연 경관이 계속 이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상상만으로 맛볼 수 있는 식재료와 음식들 역시 시선을 뗄 수 없게 한다. 인물들의 삶이 조금씩 궁금해지고 부러워지는 순간, 영화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해피 해피 브레드’ 등 자연과 음식을 소재한 영화들의 결을 이어 받았다. 예상 가능한 아름다운 영상과 전개를 변주해가는 재미가 있다. 다만 힐링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지점이 존재한다. 모든 일들이 남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여성의 역할이 한정적인 것이나 무신경한 발언 등 2020년 한국 관객이 보기에 어색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미성년자 여성의 신체부위를 언급하며 농담을 던지는 것을 넘어 그 농담을 받아들이는 게 남자들의 성장코드처럼 그려지는 걸 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꾸준히 자신들만의 장르를 변형하고 발전시켜왔지만, 젠더 감성은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일본 영화의 현주소다.
오는 14일 개봉.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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