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이 떠났다②] 요즘 ‘개콘’ 직접 봤더니

['개콘'이 떠났다②] 요즘 ‘개콘’ 직접 봤더니

['개콘'이 떠났다②] 요즘 ‘개콘’ 직접 봤더니

기사승인 2020-05-22 08:00:00


[쿠키뉴스] 이준범, 이은호, 인세현 기자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 감정의 골 밑바닥까지 드러내며 다툼을 벌인 직후의 어찌 할 수 없는 심각함과 비슷했다. 그 사이로 개그맨들의 웃음소리가 날아들었다. 누군가는 뭔가를 적다가 펜을 내려놨고, 다른 이는 자꾸만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최근 쿠키뉴스 대중문화팀 기자들은 회의실에 모여 지난 8일 방송된 KBS2 ‘개그콘서트’ 1046회를 함께 감상했다.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어쩌다 휴식기를 맞게 됐는지 직접 보자는 취지였다. 단순히 ‘재미가 없어서’라고 하기엔 이미 재미없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서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1시간6분 동안 각자 나름대로의 침묵을 지킨 이유를 네 가지 공통질문으로 들어봤다.


△ ‘개콘’을 직접 본 소감

- 인세현 기자 : 많이 웃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더 웃음이 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예상과 빗나가 당황했다. 많은 코미디언들이 스튜디오에 모여 앉아 있는 모습도, 진행자가 따로 있는 것도 낯설었다. 오프닝 분위기에 익숙해지기도 전 스튜디오 코너가 시작됐는데, 처음엔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기 힘들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겉은 예전과 달랐지만, 속은 다를 바가 없었다. 과거의 방법으로 웃음을 유발하려 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내가 변한 건지, ‘개콘’이 변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은호 기자 : ‘개콘’이 연명치료를 받아왔단 생각이 든다. ‘개콘’의 콩트엔 기발함도, 예리함도, 신랄함도, 개성도 없다. ‘뭔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있는데, 그 ‘뭔가’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게 문제다. 마지막으로 ‘개콘’을 본 게 언제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랜 시간 ‘개콘’을 멀리 했지만, ‘개콘’이 끝나면 ‘개콘’과 함께 주말을 마무리했던 추억마저 사라질 것 같아 ‘개콘’의 종영에 반대해온 많은 이들이 마음이 모여 만들어낸 기적…아니, 비극이 아닐까.

- 이준범 기자 : ‘개콘’이 맞는지 확인하지 않았으면 ‘개콘’인지도 몰랐을 것 같다. 재미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무슨 프로그램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스튜디오와 VCR 영상으로 진행되는 개그 코너를 연이어 보고 있자니 인기 없는 일요일 아침 예능 느낌이 들어 편성 시간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열심히 각 코너를 준비했을 개그맨들의 노력이 충분히 보였고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 인세현 기자 : ‘이런 장면 꼭 나와’ 코너에서 인도영화를 패러디하는 장면이 나왔을 땐 조금 웃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코너를 보면서도 아쉬움은 남았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구태의연함을 꼬집는 이런 코너가 한 발자국만 더 나간다면, 새로움을 볼 수도 있을텐데. 

- 이준범 기자 : 과거 즐겨봤던 선배 개그맨들의 출연 장면이 눈에 띄었다. 개그맨 박준형, 김대희 등 ‘개콘’의 최전성기를 누렸던 선배들이 프로그램과 후배들을 위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웃음보다 눈물이 터지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 이은호 기자 : 강렬한 인상을 받은 순간은 없다. 다만 기억에 남는 목소리는 있다. 거의 모든 코너에 추임새를 넣던 신봉선의 목소리다. 꺼져가는 흥미의 불씨를 어떻게든 당겨보려는 노력이 느껴져 애잔해진 마음은 ‘개콘’ 출연자들의 성비를 떠올리며 암담해졌다. 게다가 ‘개콘’의 하이라이트처럼 보이는 마지막 코너에선, 한 시간 내내 진행하던 신봉선이 왜 갑자기 빠지고 두 남성 개그맨이 클로징 멘트를 하는 거지? 신봉선도 무대 가운데에 서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짜증~ 지대루다!”


△ 현재의 ‘개콘’을 추천하고 싶은 시청자

- 이준범 기자 : 명절에 낯선 친척들과 어색하게 모였을 때 함께 보기 좋은 프로그램이 아닐까. 어른들에겐 ‘개콘’의 명성이면 채널을 고정할 이유가 충분하고, 아이들에겐 요즘 TV가 재미없는 이유를 설명할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요즘 ‘개콘’의 주제가 주로 가족인 점 역시 추천의 이유다.

- 인세현 기자 : 무엇인가를 틀어 놓되 집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본다면 괜찮을까. 생각보다 많은 코너가 연달아 펼쳐졌지만, 다시 찾아보거나 다음이 궁금한 내용은 없었다. 넓은 연령대, 다양한 기호의 시청자를 최대한 충족시키려 하는 것이 외려 독이 된 듯 보인다. 다 잡으려다가 모두 놓친 꼴이다.

- 이은호 기자 : 한국 코미디 역사를 공부할 미래의 학자들에게 추천한다. ‘방송사 공개 코미디의 흥망성쇠’에서 ‘망’과 ‘쇠’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개콘’이 다시 돌아온다면 꼭 바뀌어야 할 점

- 이준범 기자 :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공개코미디와 최근 트렌드를 접목할 수 있는 유능한 제작진을 외부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끈끈한 선후배 문화로 오랜 시간 이어온 공채 개그맨 특유의 전통도 끊어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개콘’의 DNA를 물려받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다시 모두가 알던 ‘개콘’의 자리를 되찾을 길이 보이지 않을까.

- 이은호 기자 : 공개 코미디 침체 이유를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태도. 흔히 ‘개콘’을 비롯한 공개 코미디가 위기를 겪는 이유로 ‘소재의 제한’을 꼽곤 하는데,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원종재 PD)를 탓할 게 아니라 외모 비하를 웃기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더는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며 웃을 수 있길, 다시 돌아올 ‘개콘’을 상상하며 바란다.

- 인세현 기자 : 1000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제작진과 출연진은 과거보다 웃음에 제약이 많아진 시대에서 코미디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한다. 어쩌면 웃음에 대한 제약은 수가 많아진 것이 아니라 그 성격이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담론을 고민하고 결과물에 반영하는 것은 창작자의 숙명이다. 이 부분에 대한 고민과 활동이 없다면 휴식기라는 극약처방도 효과 없는 약으로 남을 것이다.

bluebell@kukinews.com / 사진=KBS 캡처, KBS 제공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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