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KBS는 지난 14일 KBS2 ‘개그콘서트’의 휴식을 알렸다. 휴식의 이유로 ‘달라진 방송 환경’과 ‘코미디 트렌드의 변화’,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계’를 들었다. 지금 휴식하는 이유보다는 폐지 이유에 가깝게 들린다. ‘새로운 변신을 위한 잠시 휴식기’라고 여운을 남겼지만, 모두가 ‘개콘’ 폐지로 받아들인다. 사실상 ‘개콘’은 21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냉정히 보면 늦은 이별이다. 많은 시청자가 ‘개콘’을 떠난 지 오래됐다. MBC ‘코미디에 빠지다’와 SBS ‘웃찾사’가 폐지된 것이 각각 6년 전, 3년 전이다. KBS와 국내 방송을 대표하는 개그 프로그램인 ‘개콘’이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개그콘서트’에서 스타가 되고 전성기를 누렸거나 현재 출연 중인 개그맨들에겐 안타까운 소식이겠다. 하지만 KBS 입장에선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줬다. KBS가 ‘개콘’을 영원히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다.
‘개콘’이 한국 코미디의 왕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 것엔 ‘재미없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재미가 없어진 많은 원인 중, ‘개콘’이 기존의 전통과 시청층에 기대 거대한 흐름의 변화를 모른 척 했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개콘’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 ‘개콘’으로 유명해진 개그맨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포맷을 다양화 했고, 상징적인 방송 요일도 바꿨다. 하지만 정작 기본적인 웃음 코드는 그대로였다.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를 비하하고, 누군가를 흉내 내는 개그를 반복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지만, 그 이후에도 꽤 오랜 기간 지속됐다. 성 역할이나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개그 소재로 삼는 것도 ‘개콘’의 특징이었다. 결국 시청률은 낮지만 젊은 세대와의 공감을 유도하는 tvN ‘코미디 빅리그’보다 ‘개콘’이 더 빠르게 폐지를 맞았다.
‘개콘’ 폐지의 이유를 찾으며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 ‘개콘’의 공과와 무관하게 예능 트렌드 변화는 이미 진행됐기 때문이다. ‘개콘’의 전성기는 공개 코미디가 예능 트렌드였던 시기와 일치한다. 공개 코미디는 연기력과 무대 장악력이 뛰어난 개그맨이 무대에서 콩트와 캐릭터로 관객을 압도하는 방식으로 인기를 모았다. 시청자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수동적으로 희극을 감상했다. 이후 시간이 갈수록 다양한 시점을 보여주는 예능이 유행했다. 오디션 예능, 리얼리티 예능, 관찰 예능을 거쳐 최근 ‘부캐’ 예능의 추세로 가고 있다. 시청자는 심사위원과 출연자의 입장을 오가거나(오디션 예능), 누군가의 일상을 패널과 함께 가까이에서 공유(관찰 예능)한다. 카메라는 점점 많아지고 시청자가 이입할 대상은 늘어났다. 시청자들은 이미 유튜브와 1인 미디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들을 다시 TV 앞에 앉히려면 얼마나 재미있어야 할까.
공개 코미디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레트로의 물결을 타고 스탠드업 코미디가 부활하고, 트로트가 대세가 됐다. 과거 ‘개콘’이 대단했던 가장 큰 이유는 현장과 편집된 TV 영상에서 모두 큰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점이었다. 공개 코미디의 부활을 반드시 ‘개콘’으로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지나간 웃음 코드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지금 시대에 맞는 젊은 코드를 이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 공개 코미디 형식이 어울릴지 아닐지는 그 다음 문제다. 그 이전에 ‘개콘’식 코미디를 유튜브에서 시도한다는 발상부터 포기하는 게 먼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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