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안개가 자욱하게 끼기 시작했다. 안개는 바람에 날렸다. 거세진 바람이 짙은 안개를 몰고 왔다. 거세지만 볼이 따갑지 않은 오월바람이다. 안개와 바람에 향기가 실려 있다. 깊게 숨 쉬며 그 향기를 들이마신다. 감귤꽃 향기가 진하다. 눈을 감고 다시 한 번 깊게 들이 쉬니 아까시, 찔레, 인동초 꽃향기도 섞여 있는 듯하다. 오월의 제주엔 안개와 바람이 온갖 꽃 향을 싣고 온다.
5월 초 고사리 꺾기가 거의 끝나면서 봄꽃이 피기 시작했다. 밭담에 얹혀서 돌을 움켜쥐고 있던 송악은 거뭇한 열매 위로 새 순이 자라며 초록이 한층 싱그럽다. 까마귀쪽나무는 겨우내 초록으로 달고 있던 열매에 검은 색을 입히고 있다. 겨우내 푸른 잎을 떨구지 않던 구실잣밤나무 가로수에 새 잎이 돋아 지난해의 잎을 덮더니 밤꽃 향을 풍긴다. 귤밭엔 간밤에 무서리가 내린 듯 꽃이 하얗게 내려앉았다.
보리가 누렇게 변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보리 베기가 끝나간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직 푸르던 마늘이 며칠 새 누릇누릇하게 색이 변했다. 마늘을 뽑아내느라 분주하다. 양파 밭은 아직 푸르지만 어느 날 아침이면 그 밭에서 분주한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여기 저기 무더기로 버려지는 귤을 보며 겨우내 걸었고, 무와 배추가 꽃이 피도록 버려둔 밭을 보며 봄을 맞았다. 오월 비 내린 밭을 다시 일구고 있다.
현대식으로 새로 지어지는 병원이 개원하기 9개월 전에 출근을 시작했다. 없던 부서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함께 일할 직원은 없었다. 개원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일들을 준비하는데 매일 시간이 부족했다. 매일 퇴근 시간을 서너 시간 넘겨 사무실을 나오곤 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지하철과 사무실에 머무는 시간이 두 배는 더 길었다. 마음 한 구석엔 늘 아버지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아버진 20대 초부터 거의 30년을 연탄공장에서 일했다. 오랫동안 들이마신 연탄가루가 폐에 쌓이고 쌓여 아버지의 폐기능은 더 이상 낮아지면 안 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재채기는 물론 기침 한 번 시원하게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숨을 쉬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기도를 막고 있는 가래를 뱉어내려 힘을 쓰고 있었지만 그 힘이 미치지 못했다.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등을 두드리다 엉겁결에 등 뒤에서 아버지의 배를 힘껏 끌어 당겼다. 그리고 아버지는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누워서 하릴없이 바라만 보던 어머니에게서 안도의 표정을 보았다. 이 일을 겪은 후 불안은 더 커지고 그 때의 절망적인 아버지 모습이 한 순간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2008년 6월 중순으로 접어들었는데 감기가 돌았다. 아버지 얼굴이 발그레하고 기침이 잦아졌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전화를 해 안부를 확인하다가 결국 근무하던 병원 2인실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함께 입원해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퇴원해 집으로 가지 못했다. 그날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알지 못했다.
제주도 동쪽 중산간 지대의 송당리 마을은 과거 찾아가기 쉽지 않은 오지였다. 현재는 한라산에서 동쪽 바다로 향하는 비자림로와 제주 시내에서 성산포로 향하는 중산간 동로가 근처에서 교차하며 제주도 동쪽 중산간 지대 교통의 요지이다.
송당리에서 반경 5 km 이내의 지역에는 제주 동쪽의 유명한 오름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그 중심에 있는 오름이 당오름이다. 당오름은 오름 자체로만 보면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인근의 거문오름,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백약이오름 그리고 아부오름과 비교해 빼어난 특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당오름은 그리 높지 않고 가파르지도 않다. 오름 전체가 숲으로 되어 있어 이렇다 할 내외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능선을 돌아 내려오는 길은 1 km 내외로 비교적 짧지만 제주의 숲이 가진 특징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오름은 그 능선에 올라 걸으며 제주의 바람과 숲을 즐기기에 좋은 곳인데 당오름은 능선길보다는 둘레길이 훨씬 매력적이다. 둘레길은 전구간이 평탄하게 잘 다듬어져 있고 길 주변으로 나무가 우거져 있어 한여름이라도 서늘한 그늘 속을 걸을 수 있다. 둘레길 총 거리는 1.5 km가 채 되지 않아 삼대가 함께 걸어도 어렵지 않은 안전한 길이다.
당오름의 잘 다듬어진 길만을 걷기에는 아쉽다면 조금 더 먼 거리를 걸으며 주변 자연을 돌아볼 수도 있다. 당오름 남쪽에 괭이모루라 하는 야트막한 야산을 따라 걸어 나가 괭이모루의 산마루를 걸으며 제주의 숲을 관찰할 수도 있지만 한여름엔 산마루길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괭이마루를 돌아보는 길은 1 km 남짓하다.
당오름과 주변을 걷고 나면 2km 거리의 아부오름까지는 가 보아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아부오름은 산굼부리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오름인데 단정한 분화구 바닥이 인근의 평지보다도 낮기 때문일 것이다. 능선까지 오르는 완만한 길은 300 m 남짓하니 누구나 숨찰 겨를 없이 걷는다. 오름 능선길은 높낮이가 거의 없는 1.5 km의 길이고 때때로 분화구 안과 밖의 풍경을 보여준다. 당오름의 둘레길처럼 온 가족이 함께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송당리보건진료소 맞은편 길로 들어가 당오름 주차장에 서면 순간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수 많은 석상이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오래 전 제주에서 사냥을 하며 살던 소천국이 강남 천자국에서 태어난 금백주 (금백조, 백주또마누라, 백주또 등 여러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와 결혼해 낳은 아들 18명과 딸 28명이다.
금백주는 혼인하기 전에 아이를 갖게 되어 집에서 쫓겨났다. 아이들과 함께 바다에 버려진 금백주가 도착한 곳이 제주였는데 이곳에서 소천국을 만나 혼인해 살게 되었다. 아이들이 많아지자 금백주는 소천국에게 사냥이 아니라 농사를 짓도록 권했다. 소로 밭을 갈던 소천국에게 가져다 준 국 아홉 동이와 밥 아홉 동이를 지나가던 이가 다 먹고 가는 바람에 소천국은 밭 갈던 소와 이웃의 소까지 잡아먹었고 이로 인해 불화가 생겨 금백주와 소천국은 살림을 갈라 따로 살게 되었다.
아들이 크면서 아버지를 찾자 금백주는 아들을 소천국에게 보냈지만 소천국은 아들이 불효한다 하여 바다로 띄워 보냈다. 그러나 소천국의 아들은 죽지 않고 용왕국에 흘러들어가 왕의 셋째 딸과 혼인하고 풍상을 겪은 끝에 군마를 거느리고 제주로 돌아온다. 그 소식을 듣고 무서워 도망하던 금백주는 죽어 웃손당 당오름의 당신이 되었고 소천국 역시 죽어 알손당의 당신이 되었다. 그 형제들은 제주 각지로 흩어져 자리를 잡고 그곳의 당신이 되었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이 만든 제주엔 봄이 오면 영등할망이 식솔들을 거느리고 들어왔다가 가면서 바다에 보말과 해초의 씨앗을 뿌리며 바닷가 사람들을 보살핀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냥하며 살던 소천국이 금백주와 혼인해 농사일을 시작했고 죽어서 송당 본향당의 신이 되었다. 또 이들이 낳아 기른 아들 18명과 딸 28명은 제주 각 지역에 흩어져 자기가 있는 지역 사람들의 안녕을 살핀다. 제주는 세 할망이 보살피는 땅이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쿠키뉴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