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위해 물 가득한 무논마다 은빛햇살 가득
-중부이남 다랑이논은 모심기 한창
-기하학적 무늬와 파스텔톤 이어진 비탈논은 한폭의 한국화
[쿠키뉴스] 경북 상주· 경주=곽경근 대기자/ 중부 이남의 들녘마다 벼를 심는 이앙기가 바쁘게 움직인다. 이제 막 모내기를 마친 무논(물댄 논·水田)이 초여름의 햇빛을 강하게 받아낸다. 특히 부드럽고 넉넉한 곡선들이 모여 기하학적인 무늬 속 파스텔톤 컬러를 연출하는 다랑이논은 모심기를 위해 물을 받아놓는 이맘때가 가장 아름답다.
예부터 아카시아 꽃이 피면 모내기를 시작하여 찔레꽃이 지기 전에 마치라고 했다. 농사란 다 시기가 있어서 서둘러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지 정리가 완료된 대부분의 농지는 바둑판처럼 반듯하지만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다랑이논을 찾아 초록 풍광과 함께 농민들의 숨소리를 들어보았다.
지금은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다랑이논은 농지가 부족했던 시절, 경사진 산비탈을 힘들게 개간해 만든 계단식 논이다. 깊은 골짜기로 파고들 수밖에 없었던 옛 선인들의 인생 곡절이 골짜기마다 담겨 있다. 논과 논의 경계가 비뚤비뚤한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계단처럼 층층이 이어진 논에 담긴 물은 태양의 각도와 보는 위치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변하며 아름다운 초여름 풍경을 연출한다.
경북 상주시 낙동면 ‘용포리 다락논’(다랑이논)은 밭과 논이 산자락을 따라 빼곡히 조성돼 절경을 이룬다. ‘다락논 녹색길’을 따라 논 사이를 걸어 갑장산(806m) 기슭에 세워진 ‘갑장루 전망대’에 오르면 이제 막 모내기를 마친 층층이 무논(水田)이 풍년 들판을 꿈꾸며 봄볕을 받아 빛나고 있다. 주변 수정리, 비룡리, 승곡리, 유곡리, 신오리, 상촌리 모두 논농사를 시작했다.
‘용포리 다락논’은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험한 지형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척박한 삶이 빚어놓은 풍광이다. 다락논이란 비탈진 산골짜기에 여러 층으로 겹겹이 만든 좁고 작은 논을 의미한다.
경사가 심한 비탈에 석축을 쌓아 폭이 좁고 길게 만든 논배미로 이루어진다. 어느 것은 벼를 심은 논의 폭보다 석축의 높이가 더 큰 경우도 있다.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옛말이 있다. 이른 아침, 이틀 전 모내기를 끝내고 다락논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온 농부 김경모(58)씨는 “이곳은 위의 논에서 시작해 모판으로 사용하던 제일 아래 한 두 곳 빼고는 모내기를 마쳤다”며 “날이 밝으면 일어나 논을 돌아보면서 논물도 보고 모내기한 모가 뿌리를 잘 내리는지 살피는 것이 첫 일이다. 비탈을 오르내리는 다락논 농사가 평지보다 몇배 힘들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자식들 모두 잘 키웠다”며 “어렵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을 지킨다는 보람에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경주 OK그린청소년수련원 촬영 포인트에서 인생 샷 건지고 다랑이논 마을로
상주를 떠나 경주로 향했다. 새벽 3시에 알람을 맞추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남면 비지리 학동마을의 다랑이논을 보기 위해 해발 620m에 위치한 경주 OK그린청소년수련원을 찾았다.
수련원은 45만여 평의 국내 최대 자연학습장으로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하고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꿈을 키우던 단석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화랑들의 수련 장소였다 해서 ‘화랑의 언덕’이라고 불린다.
화랑의 언덕에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넓은 초지와 멋진 소나무가 어우러져 곳곳에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화랑의 언덕 정상부 명상의 바위가 비지리 학동마을 촬영 포인트이다. 코로나19 영향인지 이곳 역시 예년 같으면 자리싸움이 치열한 곳인데 기자 일행 외 사진작가 두 사람만이 호젓하게 촬영을 했다. 경북 경주시 내남면 단석산 아래 자리한 학동마을은 전형적인 산촌이다.
동트기 전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어둠에 갇혀있던 마을에 여명이 스며들고 이제 막 모내기를 시작한 다랑이논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연이 그려놓은 그림이다. 동쪽하늘이 붉게 물들며 해가 떠오르며 촬영이 진행된다. 약간 흐린 날씨로 계획한 황금빛 무논 사진은 건지지 못했지만 일출을 배경으로 인생사진은 한 장 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엷은 구름이 걷히고 다양한 형태의 천조각을 이어붙인 듯한 다락논에 모를 심기위해 가두어 놓은 물이 아침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이며 마을을 감싸 안는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바람에 거울 같던 무논 속 연초록 한국화는 일순 엷은 파장을 일으키며 한폭의 유화로 탈바꿈한다. 해가 떠오르고 취재진은 OK그린청소년수련원을 벗어나 임도를 따라 차량으로 30여 분을 내려가 학동마을 모내기현장을 찾았다.
도로 한편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와 드론을 꺼내자 경상도 사나이가 무뚝뚝한 표정과 큰 목소리로 “뭐하는 깁니까?” 한마디에 움찔하며 취재를 포기할 뻔했다. 기자에게 단순히 ‘무슨 일로 온 것이냐?’고 궁금해 물어보는 것이다.
이양기에 모판을 싣고, 이양기과 다랑이논을 오가며 부지런히 모내기하는 장면 등등 농부들의 협조로 땅 위와 아래서 어렵지 않게 원하는 장면들을 담았다. “금방 새참 나옵니더, 들고 가이소” 정겨운 목소리를 뒤로하고 다랑이논 마을을 벗어났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왕고섶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