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잘생기면 다 오빠’였던 시대를 지나 ‘멋있으면 다 언니’의 시대가 왔다. 어떤 이유에선지 언니들의 말은 잘 기록되지도, 전해지지도 않았다. 말을 할 무대가 없었고, 받아 적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언니들의 말에 무게감이 실리고,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사람이 많아졌다. 몇몇 언니들만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캘리그라피로 적어 냉장고에 붙여놓거나 자기 전에 한 번씩 주문처럼 곱씹어도 좋을 언니들의 말 네 문장을 정리해봤다.
△ “이렇게 못 웃기는데, 이렇게까지 쓰는 걸 보면 그것도 능력 아니겠습니까?”
지난해 11월 KBS2 ‘스탠드 업’에서 개그우먼 박미선이 33년을 일하면서 두 달 쉬었다는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나온 말이다. 자신에게 “안 웃기다”는 악플을 쿨하게 인정한 박미선은 이 말로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박미선은 이날 “젖은 낙엽 정신으로 바닥에 바짝 붙어서” 2인자로 버텼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인터뷰에서 여러 번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동안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면서도 새로운 것에 도전했고 다시 버티는 33년이었다. 몇 년 전 뮤지컬에 도전하고, 자신의 디너쇼를 진행하더니 최근엔 자신의 유튜브 ‘미선임파서블’로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도 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화해낸 다음 대중적인 유머로 승화할 정도의 내공과 시간을 가지지 못하면 꺼내기 어려운 말이다.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웃긴데 왜 날 안 쓰는지 몰라”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세련되고 멋진 화법 아닐까.
→ 박미선은 지난 7일 방송된 ‘SBS 스페셜-선미네 비디오가게’에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강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말로 자신의 어록을 다시 썼다.
△ “저와 같이 일 해보면 저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 2월 넷플릭스 ‘킹덤’ 공개 직후 진행된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영화계 거장들에게 러브콜을 받는 비결’을 묻자 배우 배두나가 답한 말이다. 이유는 명확했다. 감독이 원하는 대로, 그것도 진심을 담아 연기한다는 것이다. 배두나는 “그런 면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보인다면 저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라고 다시 한 번 언급하기도 했다. 수많은 현장에서 진심을 다해 일을 해온 단단한 시간들이 없었으면 나오기 힘든 말이다. 같은 질문에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라고 흐리는 것보다 나은 답변 아닐까.
→ 이날 배두나는 ‘킹덤’으로 불거진 자신의 연기력 논란에 대해 “한편으론 큰 틀에서 ‘그래. 당해봐야지’ 생각도 했다”는 시원한 답변으로 기자들을 또 놀라게 했다.
△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연기를 못한 것 같아요.”
지난 2월 영화 ‘정직한 후보’ 개봉 전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나리오와 영화의 차이’를 묻자 배우 라미란이 답한 말이다. 정작 말하는 라미란은 태연하고 듣는 기자들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영화 홍보가 최우선인 상황에서, 그것도 첫 단독 주연작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연기를 혹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진실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제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얘기를 막하잖아요. 전 가감 없이 얘기하고 욕을 먹는 게 더 편해요. 좋게 포장하면, 제가 뒷감당을 할 수가 없거든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대중들이 모인 한복판에 던질 용기와 배포가 없으면 입 밖으로 내기 말이다. “아직 많이 부족해서 더 배우려고 합니다”라는 평범한 겸손보다 더 반짝일 수 있는 답변 아닐까.
→ 2016년 tvN ‘응답하라 1988’ 종영 기자간담회에서 라미란은 “지금 인기는 ‘반짝 인기’라고 생각한다”, “제가 주연을 해서 작품을 말아먹더라도 부담은 느끼지 않을 것”이란 발언으로 자신의 솔직함을 이미 증명했다.
△ “좋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지난달 영화 ‘초미의 관심사’ 개봉 전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배우 김은영(치타)이 출연 계기를 설명하던 중 나온 말이다. 새로운 곡 작업이나 공연 제안이 아니었다. “연기를 해보는 건 어때요”라는 영화 제작사 대표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김은영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자신의 의지로 래퍼 치타가 배우 김은영이 된 순간이다. 김은영은 “기회가 왔을 때 놓치고 후회하는 것보다 미숙하더라도 해봐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당시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설명했다. 나중에 배우 조민수가 상대역으로 출연한다는 소식에 ‘제가 할 수 있을까요’라고 했다는 이야기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연기 경력이 있거나 따로 수업을 받지도 않았다는 상황보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내릴 때 더 후회할지 잘 알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면 꺼내기 힘든 답변이다. 같은 상황에서 “제가 해보고는 싶은데, 자신이 없어서요”라고 책임을 미루는 것보다 선명하고 멋진 답변 아닐까.
→ 이날 김은영은 “또 다른 언어를 배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말로 자신의 연기 도전에 만족을 드러냈다.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