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환 기자 = 최근 한국과 미국의 주식시장에 급등세를 보이면서 투자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워런버핏’ 때리기가 한참입니다. 일부 개미투자자들은 워런버핏이 손실을 감수하고 매도한 항공주를 대거 매입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워런버핏이 나이를 먹어서 투자에 감을 잃었다’라는 조롱까지 합니다.
워런버핏이 추구하는 투자철학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요. 혹자는 워런버핏의 투자철학을 저평가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매도하거나 우량주 장기투자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의 투자 방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또한 현재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충격 속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거두는 기업들을 보면 워런버핏이 강조하는 ‘경제적 해자’를 갖춘 회사들이 많습니다. ‘알기쉬운 경제’에서는 워런버핏이 강조하는 투자철학과 경제적 해자를 갖춘 기업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 버핏의 주주서한에 담긴 ‘경제적 해자’의 의미
주식투자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더 좁게는 워런버핏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경제적 해자’라는 용어를 한번 쯤 들어봤을 겁니다.
경제적 해자는 워런버핏이 자신의 운영하는 기업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보고서에서 언급하면서 알려진 용어입니다.
해자란 동물이나 외부인, 특히 외적으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성(城)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나 연못을 의미합니다.
즉 경제적 해자는 기업이 신규 참여자들에 대해 진입장벽(사다리)을 구축해 경쟁우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해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적 해자를 갖는 기업은 같은 업종 내 경쟁기업에 대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우위를 갖춘 기업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갖추거나 미래의 오랜 기간 동안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스테디셀러’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 기업은 경제적 해자를 구축한 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워런버핏이 주목했던 기업은 바로 코카콜라였습니다. 전 세계인들을 즐겨 마시는 코카콜라는 강력한 경쟁우위를 갖춘 브랜드 기업입니다. 수십년 동안 코카콜라의 대항마가 등장했지만 코카콜라의 ‘아성’을 깨진 못했습니다. 워런 버핏은 1988년 코카콜라를 매수해 아직까지도 매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버핏이 매수했던 당시 코카콜라의 주가는 2달러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까지 약 20배가 넘는 차익을 거두고 있는 것이죠.
또한 현재 워런 버핏이 가장 많이 지분을 보유한 종목은 다름 아닌 ‘애플’입니다. 과거 버핏은 IT업종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이었으나 몇 해 전 애플과 아마존 등 IT대장주를 일찍 매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며 애플에 적극적으로 투자했습니다.
애플은 단순 휴대폰·전자기기 업체가 아닌 ‘아이폰’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구축한 거대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을 통해 연동되는 다양한 서비스 덕분에 전 세계 수많은 ‘애플 매니아’가 생겨났습니다. 지난해 말 애플TV+라는 OTT(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런칭하면서 하드웨어 기업에서 서비스 플랫폼 기업으로 영역을 보다 확장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역시 버핏이 투자한 기업으로 강력한 경제적 해자를 갖춘 기업입니다. 아마존은 온라인 쇼핑 및 플랫폼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을 만큼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구축해 놓은 회사이기도 합니다.
◆ 버핏도 시대가 바뀌면서 진화했다
흔히 많은 이들이 가치투자를 저평가된 주식을 값싸게 매수해서 장기투자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합니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버핏의 투자 철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워런 버핏은 이른 바 저평가된 회사를 헐값에 매수해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얻는 투자 전략을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의 멘토이자 파트너 찰리멍거(버크셔해서웨이 부회장)을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합니다. 멍거는 “괜찮은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하면서 버핏의 가치투자 전략을 정립하는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또다른 변화는 버핏이 애플과 아마존의 주식을 매수했을 때입니다. 버핏은 (구글, 애플, 아마존)과 같은 IT대장주를 일찍 매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는 앉아서 손가락만 빨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아마존 투자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아마존은 매출 대비 영업이익이 저조한 저마진 전략을 고수했고, 기업의 PER(주가수익비율)도 70%가 넘었기 때문이죠. 저평가 우량 주식에 투자해 장기보유한다는 기존의 전략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버핏은 “아마존의 매출, 마진, 유형자산, 초과현금 등 수많은 지표를 고려했다”며 “아마존의 투자는 가치투자의 일환”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강력한 경제적 해자를 갖춘 기업에 대한 워런 버핏의 판단이라고 생각됩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워런 버핏의 행보가 도마에 오르고 있습니다. 한때 대거 매수한 항공주를 (손실을 감수하고) 전량 매도했고, 한때 그가 가장 선호했던 은행주들도 대거 팔았기 때문이죠. 이에 호사가들은 ‘버핏도 이제 감이 떨어졌다’고 말했고, 유명한 투자전략가 켄 피셔(글로벌 투자회사 피셔 인베스트먼트 회장)은 “내 아버지를 포함해 위대한 투자자들도 일정한 수준의 나이가 되면 감을 잃는 것이 현실”이라며 “버핏 회장 역시 다른 유명한 투자자들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심스러워졌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버핏은 과거 IT버블 시절에도 비슷한 조롱을 당했지만 버블이 꺼지면서 그의 식견이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또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리먼브라더스 파산) 당시 모두가 투자에 공포를 떨었을 때 버핏은 우량주를 싼 값에 매수하면서 엄청난 차익을 낸 선견지명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시대 이후 버핏의 선택이 올바른 방향인지 재평가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최근 과열된 증시 흐름과 관련 버핏의 조언을 첨부하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날아오는 모든 공을 스윙할 필요는 없다. 홈런이나 장타를 칠 수 있는 정말 좋은 공이 들어 올 때까지 기다려도 된다. 왜냐하면 투자에서는 스트라이크 아웃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산관리를 하고 있을 때 관중들이 스윙을 하라고 소리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잘 억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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