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2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온 배우 유아인은 어딘가 다른 사람 같았다. 인터뷰 도중 웃음이 많아졌고, 답변의 길이가 짧고 명확해졌다. 그 스스로도 인정했다. 촬영 현장에서도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고, 영화 홍보를 위한 예능도 연이어 출연했다. 긴 시간 유아인을 만나온 현장의 기자들도 신기해했다. 무엇이 그를 달라지게 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당장 표면에 드러난 변화는 영화 선택이었다. 영화 ‘베테랑’, ‘사도’, ‘버닝’, ‘국가위기의 날’ 등 최근 유아인의 출연작은 모두 제각기 다른 종류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오는 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살아있다’는 좀비가 등장하는 일종의 재난 영화로 장르적 쾌감과 인물의 깊이를 동시에 담아냈다. 어쩌면 유아인이 배우로서 새로운 시기를 시작하는 기점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유아인은 스스로도 ‘도전’의 의미가 컸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좀비 장르를 많이 좋아해요. ‘#살아있다’는 기존 좀비물과 차별화된 부분이 있어 배우로서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지점이 있었어요. 정통 좀비물의 장르적 특성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배우의 활용 방식에 색다른 부분이 있었거든요. 전반부를 홀로 쭉 끌어나가야 하는 숙제도 그렇고, 평범하고 일상적인 청년이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을 극단적 상황 감정까지 표현해야 했어요. 속도감이 잘 살아있으면서 인물의 내면에 깊이 들어가잖아요. 독특한 균형이 있는 좀비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극 중 유아인이 맡은 오준우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인물이다. 짧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그는 인터넷 방송에서 활동하는 게이머라는 점 이외에 특별한 주특기도, 타인과 차별되는 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인물의 특징이 드러나지 않아서 더 현실의 청년 세대를 대표하는 느낌이 든다. 유아인은 오준우를 실제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청년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그동안 제가 맡은 인물들이 현실적이고 보편성인 젊은이들의 모습을 함축적이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캐릭터였다면, 준우는 진짜 현실에 존재할 것 같은 옆집 청년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 지점에서 생각의 전환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엔 진지하게 가는 것보다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도, 관객들도 편한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제가 보여드린 것보다 더 실제 나와 가까운 모습을 느껴주셨으면 좋겠고, 한편으로는 제가 그동안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이미지를 깨버리고 싶었어요. 준우를 풀어내고 그려내는 건 재밌었어요. 편안함을 연기하는 게 좋았죠. 이 친구를 연기하니까 일상 속에서 밝아지는 제가 느껴지더라고요. 주변에서 제가 많이 바뀌었다고 해요. ‘왜 이렇게 밝아졌어’, ‘왜 이렇게 희망적인 얘기를 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제게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유아인의 변화는 촬영 현장에서 시작됐다. 송강호, 황정민, 김혜수 등 베테랑 선배들이 없는 현장이 오랜만이었고 분위기도 젊었다. 유아인은 얼마나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지 스스로를 시험하는 무대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과 훨씬 많이 소통했던 것 같아요. 제가 영상을 혼자 찍어서 감독님께 보내드리기도 했고요.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이유로 소통을 닫는 게 아니라, 위험할지라도 영화를 중심에 놓고 제 의견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말해선 안 될 일이 아니고, 내가 가져가야할 책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집단 창작이 이뤄지는 현장에선 항상 조심하려하고 두려워해요. 그 안에 누군가가 상처를 받거나 의심을 표하거나 불안한 인상을 남기면 좀 그랬을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우려하면서 현장에 임했구나 생각될 정도로 재밌어 해줬어요. 안도감이 들었죠.”
촬영을 마친 이후에도 이전과 달라진 유아인의 모습을 이어졌다. JTBC ‘방구석1열’, MBC ‘나 혼자 산다’ 등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예능에 출연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아인은 계속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걸 감추고 피하는 것보다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게 자연스럽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배우로서 가지는 생각도 비슷했다.
“‘#살아있다’가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제가 이어온 욕심을 동시에 풀어낼 작품에 가장 근접한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환멸을 잘 느껴요. 제 자신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죠. 그게 끝까지 찼고 30대를 지나면서 색다른 도전과 경험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제가 그동안 쭉 그려온 모습의 정점이 영화 ‘버닝’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엔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고 기다리기는 것보다 스스로 나를 좀 더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가진 기준을 꺾고 해체하고 가치관도 새롭게 해야 할 필요를 느꼈죠. ‘#살아있다’를 좋아해주시는 분이 많이 계시고, 제 색다른 시도를 잘 느껴주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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