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쿠키뉴스] 한상욱 기자 = 공주시(시장 김정섭)는 7월의 역사인물로 국가가 처한 대내외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민생을 안정시켜 백년대계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던 ‘초려 이유태’를 선정했다.
24일 시에 따르면, 이유태의 본관은 경주로 충남 금산에서 출생했으며, 장년기에는 공주의 초외와 중동에 살면서 김장생과 김집을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에 정진했다.
이유태는 스승 김집의 추천으로 희릉참봉 등 관직에 임명됐지만 나가지 않았으며, 병자호란 이후에는 선비가 가히 출사할 의가 없어졌다고 하면서 모든 벼슬을 사양했다.
이는 조선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굴욕적으로 항복한 것을 가리킨 것으로 이유태의 관직에 대한 철학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효종 즉위 이후 1659년인 기해년에 이유태는 효종의 개혁 의지에 기대를 걸고 ‘기해봉사(己亥封事)’를 지어 올렸는데, 이를 통해 호란으로 인해 무너진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국정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효종의 승하로 ‘기해봉사’는 실현되지 못하였고 이유태는 1663년(현종 4) 공주의 중동으로 낙향해 사송서재와 용문서재를 건립, 후학을 양성하는데 주력했다.
숙종 즉위 후 남인이 집권하면서 평안도 영변으로 유배되었다가 1679년(숙종 5) 유배에서 풀려나 공주로 돌아온 후 1684년 78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1881년 문헌(文憲)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갈산서원과 반계서원이 세워져 그 곳에 배향되었고 저서로는 ‘초려전집’ 2권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공주 상왕동에는 초려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1977년 고택과 함께 용문서원이 재건돼 ‘다담도담’, ‘초려 다도학당’ 등 이유태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지난 2015년 과거 공주목이었던 세종시 어진동에 초려역사공원이 조성돼 현재 인문학과 국악 강좌 등이 열리고 있다.
김정섭 시장은 “무너진 국가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국정개혁을 주장한 이유태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7월의 역사인물로 이유태를 선정했다”며, “오는 7월 31일 이유태의 사상과 학덕을 재조명하기 위한 학술강좌를 공주학연구원에서 개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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