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숲길을 걷다가 낯선 이와 자연스럽게 남은 길을 동행했다. 그 역시 제주 숲의 풀과 꽃과 나무에 관심이 많았다. 5년 전 제주에 와 생활하고 있다는 그는 올해 코로나 19가 유행하면서부터 일거리가 조금씩 줄어들어 자주 숲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길 가까이 보이는 풀과 나무에 관해 이야기 하다가 그가 정착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작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가 겪었던 서운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집을 사면서부터 계약과 이사 문제에 부딪혀 소송을 해야 했단다.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제주 사람들의 독특한 사고방식 외에는 자기가 겪었던 그 일을 설명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소소한 일부터 꽤나 중차대한 일까지 마치 실타래를 풀 듯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러나 살다보니 서운하고 난감한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이제는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단다.
나는 애초에 제주 사람들과 섞여 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1년 일정의 여행을 와 생활하면서 오름과 숲을 걸었다. 어쩔 수 없이 접한 사람들로부터 간혹 겪은 가벼운 서운함은 숲을 걸으며 씻어냈다. 제주에서 살기 위해 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더 많다는 뉴스가 생각나는 만남이었다.
오십 년 함께 산 아버지와 이별하고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몸을 의탁한 첫 노인장기요양원에서 돌보아주는 사람들의 손길이 익숙해질 즈음 어머니는 보다 좋은 시설을 찾아 거처를 옮겼다. 나 역시 몇 달 살던 오피스텔을 나와 다시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다. 아침과 저녁으로 들러 출근과 퇴근 인사하고 주말엔 살다시피 하며 어머니 건강을 살피는 아들이 귀찮기는 새로 옮긴 요양원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입소한 요양원에서의 생활도 서로 낯이 익으며 편안해졌다. 어머닌 내가 아침에 들르기 전 요양보호사들을 채근해 세수를 하고 말끔해진 얼굴로 침대에 기대 앉아 나를 맞았다. 그러나 뇌졸중 후유증으로 침상생활 십년 째에 접어든 70대의 어머니 건강은 아주 사소한 것이 빌미가 되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어서 늘 조마조마했다. 이상 증상이 보이면 입원해 조절한 후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입원 치료 주기가 1년에서 8개월 그 다음엔 6개월로 조금씩 짧아졌다. 이즈음부터 늦은 밤, 이른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날 갑자기 해야 할 일이 생겨 퇴근이 많이 늦어졌다. 지하철에서 내려 어머니가 생활하는 요양원을 지나며 잠시 망설였다. 늦은 밤 어머니가 생활하던 요양원의 창엔 아직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지만 이미 잠겼을 문을 열어 달라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길을 배웅한 어머니의 밝은 눈초리와 표정이 떠올랐다. 저녁 인사는 어쩔 수 없이 생략하고 아침 출근길에 뵙기로 했다. 내일 하루만 지나면 새해이니...
제주올레의 성공 이후 많은 길이 만들어졌다. 새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오래 전에 있었지만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잊혔던 길을 사람들이 걸을 수 있도록 다듬고 이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제주도 동남쪽 중산간 지대의 넙거리오름과 머체오름 아래의 목장지대 주변 숲길을 걷는 한남리의 머체왓숲길과 머체왓소롱콧길 그리고 서중천탐방로 (서귀포시 남원읍 서성로 755) 도 그 중 하나다.
‘머체’는 돌무더기를 뜻하고 ‘왓’은 밭을 뜻하는 제주어라고 소개되어 있다. 소롱코의 의미에 대해서는 길의 모양이 작은 용을 닮았다는 뜻에서 변형된 명칭이며, ‘코’의 의미는 ‘코지’, ‘곶’의 의미로 해석된다.
최근 이곳에 서중천의 범람하는 물을 저장하기 위한 대형 저수지가 건설되면서 불과 1년 전 이곳을 소개하는 포털의 사진이나 길을 안내하는 길 입구의 지형 사진이 현재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길의 큰 틀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데,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머체왓숲길은 이 일대 목장 가장자리의 숲길을 가로로 걷고, 소롱콧길은 오른쪽의 서중천을 배경으로 세로로 걷는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여기에 서중천을 따라 하류로 약 3km의 서중천 탐방로가 추가됨으로써 다양한 제주의 숲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머체왓숲길은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사려니숲길이나 제주의 4개 자연휴양림에서 운영하고 있는 숲길, 동백동산 숲길 그리고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이나 다른 곶자왈의 탐방로와는 성격이 많이 다른 길이다. 머체왓숲길은 아직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가지 않은 길이어서 야생의 제주 숲을 볼 수 있는 길이며 순간순간 변화가 많아 걸으면서도 저 앞에 무엇이 드러날 풍경이 궁금해지는 길이다.
새로 건설한 저수지 왼쪽 끝머리에서 임시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정면에 삼나무 울타리 사이에 노란 리본이 보이는데 엉성하지만 머체왓숲길로 들어가는 입구다. 그리고 이내 바다에 풍덩 빠지듯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더듬어 걷는다. 하늘이 완전히 가려진 길 위에서는 동서남북을 구별하기 어렵다. 다만 누군가 걸어간 흔적을 보고 그 곁의 리본을 확인하고 걷는다. 탐방이 아니라 탐험하는 느낌의 길이다.
길을 걷다 시누대와 탱자나무를 만났다. 언젠가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다. 무너져가는 밭담이 보이지만 밭은 이미 어린 동백나무와 덩굴이 점령한지 오래된 듯하다. 뿌리가 바위를 감싼 거대한 나무 아래서 때마다 모여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빌었을 사람들은 반세기 전 뿔뿔이 흩어졌고 남이 이곳에 와 그들을 추억한다.
머체왓숲길을 걷다가 머체왓소롱콧길을 만나면 어느 방향의 길을 잡을지 잠시 망설여진다. 그대로 직진하면 7 km가 되지 않는 머체왓숲길을 걸어 마무리하고 왼쪽으로 접어들면 머체왓소롱콧길을 따라 10km 이상을 걸으며 행복한 피곤함을 즐길 수 있다. 체력과 상황에 따라 탐험 구간을 선택할 수 있는 숲길이다. 어느 길이든 마음속에 간직하게 될 충만함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걷다보면 사람의 손을 탄 적이 없는 숲, 사람이 떠난 뒤 자연으로 돌아가는 숲, 온갖 나무와 풀을 쓸어내고 새로 만든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을 차례로 만나는 힘찬 숲이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