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한 번의 무대가 훗날 수많은 최초·최고의 기록을 쓴 ‘아시아의 별’이 탄생한 자리라는 것을 아마 보아 자신도 몰랐으리라.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보아의 지난 날은 곧 K팝의 역사이기도 했다. 한국 가수 최초 일본 오리콘 차트 1위, 한국 가수 최초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역대 최연소 가요대상 수상, 해외 시장을 공략한 첫 번째 성공 모델이자 후배 가수들과 가수 지망생들의 모범적인 역할 모델….

어린 여성들을 쉽게 깎아내리고 끌어내리던 시기였다. 보아는 데뷔 초 인터뷰에서 “두 마리 토끼”라는 표현을 썼다가 ‘애늙은이’라며 비난 받았다. 악의적이고 모욕적인 루머가 사실인 양 온라인을 떠돌아도, “안티 덕분에 데뷔하기 전에 (자신이) 많이 알려진 건 사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수록 보아는 자신을 완벽하게 벼리고 단련했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넘버 원’(No.1), ‘아틀란티스 소녀’ ‘마이 네임’(My Name), ‘걸스 온 탑’(Girls on Top) 등 숱한 히트곡을 냈다. 2009년 낸 미국 데뷔 음반은 빌보드 메인 음반 차트인 빌보드200에서 127위에 올랐다. 한국 가수 최초의 기록이었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보아는 아티스트가 갖춰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종합 엔터테이너로서 재능을 가졌을뿐 아니라, 그 재능을 끊임없이 개발하려고 노력”해온 데다가 “높은 완성도의 음반을 꾸준히 내면서도, 자신이 성장해온 과정을 후배들과 나누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역할 모델”로 자리매김해서다. 보아는 업계 후배들뿐 아니라 오직 나 자신으로 존재하며 성취하고자 하는 뭇 여성들에게도 용기와 영감을 준다.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지 않는 대신 “내 안에서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그 소리에 집중하자”(‘라이프플러스’ 인터뷰)는 메시지를 자신의 족적으로 증명한 덕분이다.
보아는 데뷔 초 가수로서 자신의 수명을 5년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당시 아이돌의 생명 연한이 그 이상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아는 이제 “보아라는 아티스트로 태어나서 내가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죽자”(네이버 브이라이브)고 말한다. 그 무엇에도 갇히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름으로만 설명되는 존재. 재능과 노력, 시간이 축적돼 만든 보아의 오늘이다.
wild37@kukinews.com /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