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기소유예 받았어요“…감형 지식 공유하는 ’성범죄 카페‘

‘덕분에 기소유예 받았어요“…감형 지식 공유하는 ’성범죄 카페‘

기사승인 2020-10-02 05:30:01

▲'성범죄자 카페'에 올라온 강제추행 후기글/ 카페글 캡처
[쿠키뉴스] 김희란 인턴기자 = # “강제추행 후기 올려드립니다” 지난 16일 한 대형 포털사이트 카페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작성자 A씨는 “일행과 술을 마시던 중 그분(피해자)이 화장실을 갔을 때 따라 나갔다. 화장실 문도 열어봤다”며 “그분이 화장실에서 나오자 3~5분가량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기습 뽀뽀를 했다. 그분이 놀라 나의 뺨을 때리고 경찰에 신고해 조사를 받게 됐다”고 적었다. A씨에 따르면 검찰은 징역 1년을 구형했고, 재판에서는 벌금 500만 원 형을 받았다. 피해자에게는 100만 원의 합의금을 지불했다. 카페 회원들은 ‘500만 원이면 나쁘지 않다’, ‘합의금 100만 원이면 엄청 싸게 막았다’, ‘초범인데 뺨 한 번에 1년 구형이라니’ 등 댓글을 달았다.

성범죄 ‘감형 노하우’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가 성행 중이다. 지난 2010년 8월 개설된 이 카페 회원은 3만7000여 명이다. 전체 게시글은 6만여 개가 넘는다. 가입 요건은 따로 없다. 해당 카페 소개글에는 “대한민국 1위의 독보적인 성범죄 커뮤니티”라는 설명이 붙었다.

지난 17일 기자가 직접 가입해 확인한 결과, 카페는 강제추행, 강간, 성매매부터 ‘아청법 위반’, ‘n번방’ 등 각종 성범죄명을 제목으로 하는 게시판들로 구성돼 있다. 회원들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혐의에 해당하는 게시판에 사건명, 사건발생일시, 사건발생장소, 사건진행단계 등 사건내용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회원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감형 방법을 ‘전수’하거나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 받는 식이다.

▲해당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들/ 카페글 캡처

이 카페 운영자는 한 법무법인이다. 카페 운영진의 아이디로 추정되는 ‘카페 변호사’는 회원들에게 법률 조력과 24시간 법률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운영진은 사례글이 올라올 때마다 “카페 회원님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좋은 일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변호사를 대동해라’, ‘CCTV를 보여달라고 부탁해봐라’, ‘카페에 있는 반성문과 탄원서를 참고해라’ 등 감형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카페 회원들이 남긴 글에서 반성하는 모습은 엿볼 수 없었다. 한 회원이 기소유예, 무혐의, 선처 등의 처분을 받았다고 소식을 알리면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기 바빴다. 카페 회원 B씨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무혐의 받았습니다”면서 “그동안 강간으로 고소당하면서 심적으로 너무 힘들고 매일 술로 버티며 살았는데 오늘 검찰에서 무혐의를 받았다. 이 카페에서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바로 변호사를 선임한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적었다. 또 다른 회원 C씨는 “카페 관리자와 회원들 덕분에 기소유예 받았다”면서 “카페에 있는 합의서, 탄원서 양식 등을 적극 활용해 남은 사건들 다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회원들을 응원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회원들도 많다. 회원들은 ‘야동을 소지하는 것도 죄가 된다니, 여성상위시대에 남자로 태어난 게 잘못인 것 같다’,  ‘사진 한두 장 요구도 아청물 제작이면 너무한 거 아니냐’ 등의 글을 올리며 불평을 했다. 불평을 하는 회원들을 향해 카페 운영자는 “성범죄에 대해 갈수록 높아지는 형량과 사회적 비난으로 인해 오늘도 두려움에 잠 못 이루며 고통스러워하는 상황일 것이다”라며 “회원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자 거듭 고민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법무법인은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결이 닿지 않았다. 

▲'n번방' 가해자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대/ 박태현 기자

해당 카페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조치는 없다. 조세희 변호사는 “범죄 후 반성을 하지 않고 형량을 줄이려 모의를 하는 등의 행위는 도덕적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법적인 문제는 없다”면서 “이들 카페 활동을 제한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등을 해치는 기본권 침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는 해당 카페와 같은 성범죄 커뮤니티가 성폭력을 방조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성폭력’이라는 단어를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상단에 해당 카페와 같이 성범죄 가해자들을 조력하는 사이트들이 가장 먼저 뜬다”면서 “이러한 사이트들이 많이 노출될수록 성범죄자들은 본인의 죄를 깨달을 수 없게 된다. ‘성범죄는 면제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포털 사이트가 나서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소장은 “개인에 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포털 사이트들이 성범죄 양산 문화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성범죄 조력 사이트들을 제재 혹은 경고조치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heerank@kukinews.com
김희란 기자
heerank@kukinews.com
김희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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