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일기’로 암 경험담 푸는 여성들…만족도 97% 

‘모바일 일기’로 암 경험담 푸는 여성들…만족도 97% 

암환자 사회복귀 지원하는 ‘고잉 온 다이어리’ 캠페인

기사승인 2021-02-16 04:33:01
이대여성암병원에서 진행된 고잉 온 다이어리 프로그램에 참가한 암 경험자들이 지난 1월 29일 서로의 경험과 작성한 일기에 대해 공유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모임을 가졌다.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방사선치료가 끝났어요. 오늘은 포트(케모포트,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가 편하게 주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피하조직에 삽입하는 관.) 빼는 날이에요.” “고생했어요. 긴 싸움에서 이겨낸 것을 축하드려요.”

‘고잉 온 다이어리(Going-on Diary)’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암 경험자들은 단 세 줄의 일기를 통해 암을 극복하고 있다. 이들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상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 정보 등을 짧은 글과 사진으로 표현함으로써 정서적 지지를 받는다. 지난 달 4일부터 약 4주간 비대면으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의 만족도는 97%가 넘는다. 공식적인 프로그램 기간은 끝났지만 60명의 참여자들의 우정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잉 온 다이어리’ 참가자 모집부터 관리까지 담당한 이지연 이대여성암병원 간호부 주임간호사는 “여성암의 경우 의료기술 발달로 예후는 좋아졌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하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비슷한 연령대의 암 경험자들과 암 경험을 공유하고 정보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며 서로를 응원해주기 때문에 재발, 사회복귀 등에 대한 두려움을 잊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난소암, 유방암 등의 여성암은 엄마로서, 딸로서, 직장인으로서 사회적 활동이 왕성한 나이에 주로 발병한다. 남성암의 발병연령이 보통 60~70대라고 하면 여성암은 30대 후반부터 60대 사이에 많이 발생한다. 게다가 항암치료가 조기폐경을 유도하고 심한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심리적 고충을 가중시킨다. 이에 여성암 경험자들은 치료가 끝나더라도 불안감,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지원하고자 기획된 것이 ‘고잉 온 다이어리’다. ‘고잉 온 다이어리’는 글로벌 의료기업 올림푸스한국과 대한암협회가 2019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고잉 온 캠페인’ 중 하나다. ‘고잉 온 캠페인’은 암 조기검진, 치료기술 발달 등으로 암 생존율이 증가함에 따라 암 경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기획됐다. 캠페인 이름은 암 발병 후에도 암 경험자들의 아름다운 삶은 ‘계속된다(Going on)’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잉 온 다이어리’는 암 경험자들이 일기를 쓰며 서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암 병동이 있는 전국 주요 병원과 협력해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모바일 일기 어플리케이션 ‘세줄일기’를 통해 주어진 주제에 맞춰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짧은 글과 사진으로 표현하고 이를 함께 공유한다.

이대여성암병원에서 진행된 일기의 주제는 새해 목표일기, 장점쓰기, 극복일기, 감사일기 등이다. 더불어, 의료사회복지사와 함께 화상 모임으로 만나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시간도 갖는다. 일기쓰기 기간이 끝나면 참가자들의 일기를 책과 작품으로 만들어 병원과 온라인에서 전시된다. 

이 간호사는 “참여자들이 사진과 함께 세 줄짜리 일기를 올리면 다른 참여자들이 댓글을 달면서 서로 소통하는 시스템”이라며 “보통 암환자라고 하면 60대 이상인 경우가 많은데 여성암 환자들은 30~50대도 있어서 12명~15명씩 비슷한 연령끼리 팀을 나누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또래가 모였기 때문에 친목도모가 빠르게 이뤄졌고, 프로그램이 끝난 지금까지도 따로 만든 단체채팅방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여성암병원에서 진행된 고잉 온 다이어리 참가자들이 작성한 온라인 일기 캡처 화면


이 간호사도 암을 경험했다. 비교적 예후가 좋다는 ‘갑상선암’의 투병생활을 끝냈지만 그 역시도 참여자들의 일기를 통해 위로와 지지를 받았다. 그는 “의료인이라 암에 대한 정보를 잘 알고 있었고, 다른 여성암 환자들에 비해 예후도 좋은 암이었지만 참여자들의 글에 크게 공감했다”며 “또 글을 읽다가 정말 작은 것도 장점이 될 수 있고 감사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 주마다 주제에 맞춰서 일기를 쓰게 돼 있는데 ‘자신의 장점’을 가지고 일기를 쓰는 날에는 일주일 내내 자신의 장점에 대해 생각하고, ‘감사’가 주제인 주에는 감사한 일들만 생각하다보니 삶을 마주하는 자세가 달라졌다”고 전했다. 

한 참여자는 심한 우울증을 극복하고 직장 복귀에도 성공했다고 이 간호사는 밝혔다. 그는 “의사가 직장 복귀와 프로그램 참여를 직접 권유할 만큼 우울증이 심했다. 30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가정이 있고 직장에서도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이었는데 유방암 진단을 받고 많이 힘들어했다”면서 “그런데 나중에는 다른 참여자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긍정적 변화가 나타났다. 좋은 생각을 글로 쓰는 것,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위로 받고 공감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들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 간호사는 “이 프로그램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97%가 만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암 경험자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국가 지원 프로그램이 없진 않지만 실제 체감하는 지원은 없는 것 같다”며 “그 누구보다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암 경험자들을 위한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대여성암병원 ‘고잉 온 다이어리’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일기는 내달 병원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suin92710@kukinews.com
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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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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