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최근 진달래, 이재영·이다영 자매 등 유명인들과 관련된 ‘학폭(학교폭력) 미투’가 논란이 되고 있다. 피해자들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당시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고통스럽다고 호소한다. 성장기에 겪는 폭력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인관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거나 과거의 기억 때문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다.
고민수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성장기에 겪는 학대나 폭력 경험은 정서적인 부분은 물론 뇌 발달에도 영향을 준다”며 “또 친밀하고 중요한 관계에서 폭력이 지속되면 어디든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면서 만성적인 트라우마가 생기게 된다. 그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조금 다른 ‘복합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PTSD)’가 평생에 거쳐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정서나 인지조절이 어려워지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 삶, 가치관 등 모든 부분에 있어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대인관계 유지에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되고 성인이 돼서도 그런 현상이 지속돼 사회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울, 불안, 사회 부적응 등을 호소하는 성인 환자들을 보면, 과거 자신에게 의미가 있었던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CPTSD는 반복적인 신체·정신적 폭력 등이 장기간 지속되며 발생하는 정신적 외상으로, 정서조절 어려움, 부정적 자기개념, 대인관계 고립 등이 나타날 수 있다.
고 교수는 “모든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능력이 있다. 사건 이후 한 달까지 계속적으로 재경험하고 불안해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정상적인 회복과정이나, 한 달 이상 진행되면 질환이 된다”며 “특히 고통 받았던 기억이 불씨처럼 남아 있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갑자기 발생하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릴 때 학대나 학교 폭력 경험이 있었지만 성인이 된 현재 잘 회복해서 지내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는 것 같으면 한번쯤 전문가와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특히 “가정이든 학교든 아이에게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만약 폭력이 발생한 뒤에 그 사실을 알게 됐다면 그냥 있을 수 있는 일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확실하게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며 “아이는 성인처럼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갑자기 짜증을 부린다거나, 일탈 행동을 한다거나,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는 등의 변화가 나타난다면 정서장애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약자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전이·순환·반복이라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에 전문가들은 학대와 학교 폭력 문제에 대한 정부 개입,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유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보건복지 ISSUE &FOCUS 제397호 ‘학대·폭력 문제에 대응하는 보호서비스 현황과 과제’를 통해 “학대와 폭력은 물리적 힘이나 위계, 의존, 취약성 등의 불균등한 권력 관계에서 기인하고, 약자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학대·폭력의 경우 피해가 장기화될 수 있다”며 “이를 야기하는 불균등한 구조에 개입해 피해자를 학대·폭력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고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통해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학대·폭력에 대한 사법적 정의와 함께 피해자 회복을 위한 개입이 필요하다”며 “학대나 폭력이 초래하는 신체적, 정신적 손상과 장기적 피해를 고려할 때 가해자 처벌 등의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과 동시에 피해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한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학대·폭력은 전이되고 순환·반복되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피해자의 치료와 회복을 위한 적극적 개입이 요구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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