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미가 지난달 23일 공개한 신곡 ‘꼬리’의 뮤직비디오는 ‘배트맨 리턴즈’를 노골적으로 오마주한다. 영화에서 순종적이고 쉽게 무시당하던 카일은 높은 건물에서 떼밀려 죽지만 고양이들의 도움으로 부활해 악당 캣우먼이 된다. ‘꼬리’ 뮤직비디오 속 선미도 그렇다. 순정파였던 선미는 자신을 취조하던 연인의 손에 떼밀려 추락한다. 차디찬 길에서 숨이 끊어지려는 찰나, 고양이 몇 마리가 몰려와 선미의 얼굴을 핥는다. 다시 생명을 얻은 그는 연인을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한 편의 안티 히어로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뮤직비디오와 달리, ‘꼬리’의 소재는 사랑이다. 다만 사랑을 순정과 낭만으로 표현하는 대신, 욕망과 파멸로 그렸을 뿐이다. 복수극을 그린 뮤직비디오 때문만은 아니다. 무대에서도 선미는 목을 졸리거나 주먹을 휘두르며 거칠고 파괴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안무가와 신체를 밀착하는 동작은 성애적 욕망 표현으로도 읽힌다. 선미는 이 곡이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본능을 미친 듯이, 가감 없이 표현하면서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적인 동작이 돋보이는 안무는 팝 가수 비욘세·제니퍼 로페즈 등과 협업했던 안무가 자넬 기네스트라의 솜씨다.

선미가 속해있던 원더걸스는 당시 소속사 대표였던 박진영 프로듀서의 지휘 아래 고정된 ‘소녀’의 이미지를 재현했다. 노래에서 선미는 짝사랑하던 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순수한 소녀’(‘텔 미’)였고, 나르시시즘에 빠진 ‘철부지 소녀’(‘소 핫’)였으며, 떠나려는 연인을 붙잡으려는 ‘성숙한 소녀’(‘노바디’)였다. 마찬가지로 박진영이 프로듀싱한 솔로 음반에선 감각적인 사랑에 눈을 뜬 여성(‘24시간이 모자라’)이되, 상대를 기다리는 여성(‘보름달’)을 표현했다.
하지만 스스로 만든 음악 안에서, 선미는 언제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성이었다. 그는 사랑에 설레는 소녀나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의 전형을 벗어 던졌다. 원더걸스 해체 이후, 선미는 ‘가시나’-‘주인공’-‘세이렌’ 3부작을 통해 사랑이 끝난 뒤에도 강인하게 살아남은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음악적으로는 태평소를 활용한 댄스 팝 ‘날라리’와 몽환적인 시티 팝 계열의 ‘보라빛 밤’ 등 멈추지 않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다. 오직 자신의 이름으로만 설명되는 가수. ‘선미’라는 브랜드는 그렇게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wild37@kukinews.com / 사진=선미 ‘꼬리’ 뮤직비디오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