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지난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디 오케스트라’ 공연(기사)을 감상한 뒤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7년 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게임 OST 오케스트라 플래시몹’이 떠올랐기 때문인데요.
당시 플래시몹은 게임 중독법 등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저항하기 위해 열렸습니다. 공연에 나선 오케스트라는 ‘크레이지 아케이드’, ‘모두의 마블’ 등 우리에게 익숙한 게임 OST 6곡을 연주하고 흩어졌습니다.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도 던지지 않았지만 ‘게임은 중독이 아닌 문화’라는 것을 표현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몸짓이었습니다.
그날 광장에 모인 인원들 중에, 7년 뒤 세종문화회관에서 개관 43년 만에 처음으로 게임 관련 음악 콘서트가 열릴 거라고 예상한 이가 있었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OST를 오케스트라로 재해석한 ‘디 오케스트라’는 인기 가수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열기로 뜨거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의 위협에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던 이들이 간만에 기지개를 켜고 광화문을 찾았는데요.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열린 공연 모두 전석 매진됐습니다.
공연 시작 2시간 전부터 공연장 앞은 발 디딜 곳 없이 붐볐습니다. 입구에 놓인 ‘티모’ 등 LoL 챔피언 풍선들과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관객과 행인들. 화려한 의상으로 무장한 코스튬 플레이어. 기념품을 사려는 관객들. 이들의 반짝이는 눈빛, 웃음소리를 접하니 단순한 음악 공연이기에 앞서 게이머들의 대축제와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날 공연에서는 ‘소환사의 부름(Summoner's Call)’도 연주가 됐는데요, 6년 전 플래시몹에서도 연주가 된 곡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가슴이 뭉클했던 곡이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2005년과 2010년 “게임은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게임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 예술로 발전했습니다. 일부 게임사의 시네마틱 영상은 영화의 퀄리티를 방불케 하고, ‘사일런트힐’이나 ‘워크래프트’와 같이 탄탄한 서사를 갖춘 게임은 실제 영화로 각색되기도 합니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죠. ‘파이널판타지’ 등 오래도록 사랑 받는 게임 음악이 탄생한 이후, 걸출한 작곡가들이 작업에 참여하면서 높은 품질의 곡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당장 오는 6월 출시되는 넷마블의 ‘제2의 나라’만 해도 일본 영화 음악계의 거장 히사이시 조가 OST를 맡았습니다. 어엿한 대중음악으로 사랑받는 곡도 나왔는데요. LoL의 가상 K-POP 그룹 K/DA가 부른 ‘POP/STAR’는 2018년 음원 공개 당시 아이튠즈와 빌보드 K팝 부문 1위에 올라 화제가 됐습니다.
게임은 더 이상 하위문화가 아닙니다. 점심시간이면 회사 회의실에 모여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로 커피 내기를 하는 동료들의 모습도 볼 수 있고요, 때론 회식 2차 장소가 PC방이 되기도 합니다. 게임이 취미인 것이 죄스러워 숨기고만 싶었던 시대는 분명 저물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코로나19의 창궐로 말 바꾸기를 했습니다만,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해 논란이 됐었죠. 여전히 일부 언론은 살인사건 등 중범죄의 가해자가 게임에 몰입했다는 사실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마냥 우려스럽지만은 않습니다. ‘플래시몹’ 이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듯, 또 한 차례의 7년이 지난 뒤엔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따뜻해질 거라고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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