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는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지고 발인은 11일 오전 6시에 이뤄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남숙 여사와 아들 이용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딸 지원 정원, 사위 허태수 GS그룹 회장 등이 있다.
9일 오전 입관식 후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고인과 친분이 있는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는 이날 오후 3시께 빈소를 방문해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국난을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윤호중 원대대표도 이날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송 대표는 "고인께서는 통합 정신을 실천하신 분이다. 특히 고인께서 하신 좌우명 '해불양수'(海不讓水)는 제가 인천시장 시절 좌우명으로 삼기도 했다"고 했다. 해불양수는 바다는 물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기문 전 유엔(UN)사무총장은 조문을 마친 후 "고인께서 총리로 계실 때 (제가) 외교통상부 차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며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셨다. 그런데도 항상 올바르게 일 처리를 하셨다. 공직자로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고 말했다.
재계에 조문도 이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그룹 회장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조화를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1934년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명산리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 전 총리는 경복중·고와 서울대 법대 등 엘리트 학교를 거쳤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형편으로 대학시절 내내 입주과외로 학비를 벌며 수학해야 했다.
대학 졸업 후 고시 공부를 한 이 전 총리는 군 복무 중 사법시험에 합격해 이등병에서 군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했다. 포천출신 고시합격 1호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1963년 서울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법조인 길로 들어선 이 전 총리는 5개월간 반짝 변호사를 하다가 검사가 된다. 이후 법무부 법무실 검사,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지난 80년 서울지검 특수1부장·형사1부장에 오른다.
법조인으로는 유일무이하게 3륜을 모두 거친 이 전 총리는 "판사 시절은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내는 판단력, 검사 시절에는 권력의 생리를 체험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라고 한 바 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서 각 한차례 모두 세 차례나 원내총무를 맡은 이 전 총리의 정계 경력도 화려했지만 대권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대표 물망에 올랐지만 당시 이회창 후보에 밀려 결국 한나라당을 탈당해 자민련 총재로 변신했다.
이후 2002년에는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해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실패, 이후 한나라당에 복당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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