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잇이 뭐야"라고 물으니 '뽁뽁이'로 익숙한 포장재와 비슷한 모양을 한 실리콘 장난감을 눈앞에 들어 보인다. 작은 팝잇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 용돈으로 산 모양인데 1만원을 훌쩍 넘기는 대왕 팝잇을 또 사는 건 왠지 부담스러웠나 보다.
팝잇 푸시팝이라 불리는 이 장난감은 최근 아이는 물론 어른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손가락으로 튀어나온 반구를 누르면 '톡톡' 소리와 함께 반대쪽으로 들어간다. '겨우 이런 게 인기라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순하다.
하지만 유명 쇼핑몰 장난감 베스트 순위 상위권에서 내려오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인스타그램에 팝잇 관련 게시글만 8000건에 달한다. 실제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 손에 크기도, 모양도, 색깔이 다른 다양한 팝잇이 들려 있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학교 앞 문구점은 이미 팝잇에 점령당했다. 심지어 학교와 멀리 떨어진 전통시장 가판 위에 판매 중인 팝잇도 볼 수 있다. 장난감에 별 관심 없는 우리 아이까지 팝잇을 종류별로 수집하는 것을 보면 인싸템이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아이들의 마음과 다르게 엄마 아빠들은 걱정을 쏟아낸다. 팝잇은 수집욕을 부를 만큼 종류가 다양한데 몇천원부터 1만원 이상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끝없이 사주기엔 부담이란 것이다. 또 학업에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걱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팝잇을 모으는 아이들은 무슨 마음일까.
전모(9·서울 양천구)양은 "팝잇 소리가 재미있고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답했다. 주변 네 명의 또래 친구로부터 같은 대답을 들었다.
김모(8·경기 화성시)군도 "요즘 학교에 안 가지고 오는 애들이 없다"면서 "(반구를) 누르면 기분이 좋고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재밌다'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공통된 답변이다. 장난감인 만큼 재미는 어쩌면 당연하다. 직접 팝잇을 해보니 내 어릴적 뽁뽁이를 터뜨리며 놀던 느낌과 비슷하다. 아이들은 팝잇으로 게임을 만들어 놀기도 한다고.
또 아이들 말처럼 실제 팝잇과 같은 장난감류, '피젯토이(한 손에 쥐고 반복적인 동작을 하는 장난감)'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집중력을 높이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젯토이의 시작은 장난감이 아닌 치료용으로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를 치료하는 목적을 위해 사용됐다.
연구자 미디어 '더 컨버세이션'은 지난 7일 피젯토이를 연구하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컴퓨터 미디어학과 캐서린 이즈비스터(Katherine Isbister) 교수의 기고를 통해 "피젯토이는 스트레스가 많은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실용적일 수 있다"고 밝했다.
그는 미국 조지아 토마스 카운티 중학교 셜리 스탈베이(Sheryl Stalvey) 교사의 스트레스 볼(피젯토이) 연구 결과를 예시로 들었다. 해당 교사가 6학년에게 스트레스 볼을 7주 동안 사용하게 했더니 사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태도, 집중력, 쓰기 능력, 사교성 등이 향상됐다는 내용이다.
이에 앞서 영국 서레이(Surrey)대학 연구진은 지난 2015년 유럽통증저널(European Journal of Pain)에 수술과 같이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에서 스트레스 볼은 이들의 불안을 크게 감소시킨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상황을 1년 넘게 버티면서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1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 46.0%가 코로나19로 인해 학업 스트레스가 늘었다고 답했다. 연령별로 13~18세가 48.2%로 집계돼, 스트레스가 가장 많이 늘었다고 답했다. 이어 19~24세는 47.2%, 9~12세는 39.9%나 학업 스트레스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청소년의 신체활동 시간은 일주일 평균 2.1시간으로 직전 조사인 2017년(3.8%)보다 2시간 가까이 줄었다.
반면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은 늘었다. 청소년 10명 중 4명(35.8%)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으로 조사됐다. 1년 만(30.2%)에 5.6%포인트 증가했다.
또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은 2021년 1분기 온라인 상담 결과를 분석한 결과, 정신건강 관련 고민 상담은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57.2% 늘었고 정신건강 세부 영역 중 '우울 및 위축감'을 호소하는 경향은 무려 195.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한 엄마는 "학교를 자주 안가고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가 많이 답답해한다"면서 "요즘 청소년 자살률이 많이 높아졌다는데 우리 아이도 이전보다 무기력해 보여 걱정이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소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수업 확대로 학교 공백과 학습 결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부와 정치권, 시민단체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변화한 삶에 어떤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본 기억은 없다.
'스트레스 해소 장난감'으로도 불리는 팝잇의 치솟는 인기 이면에 마음 둘 곳이 부족한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 한 켠이 무겁다.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