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꽃밭’(FLOWER GARDEN) 가사가 재밌어요. ‘되어줄래 나의 엠마스톤’은 자신의 닮은꼴 배우로 언급되는 라이언 고슬링을 염두에 둔 구절인가요.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는데(웃음), 그 구간에서 음악이 재즈 분위기로 바뀌어요. 영화 ‘라라랜드’ 속 장면이 연상돼서 이런 가사를 썼습니다.”
Q. ‘꽃밭’은 ‘K팝 아버지’로 불리는 황현 프로듀서와 작업한 곡입니다. 황 프로듀서와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요.
“제가 진행하는 네이버 나우 ‘퀘스천 마크’에서 형(황현)이 게스트로 나왔어요. 제가 1년여 간 ‘퀘스천 마크’를 맡으면서 연락처를 받은 유이한 사람이 황현 형과 원슈타인이에요. 형이 대중음악을 많이 하시지만, 클래식을 전공하시는 등 다룰 수 있는 음악 폭이 넓어요. 악기 연주도 워낙 잘 하셔서 즉석에서 만들어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Q. ‘네이버 나우’에서 연락처를 교환한 또 다른 아티스트, 원슈타인은 다른 타이틀곡 ‘카디건’(CARDIGAN)에 피처링했습니다.
“관심 갖고 지켜보던 아티스트였어요. 곡을 만들어둔 지는 좀 됐는데, 원슈타인이 최근 (MBC ‘놀면 뭐하니?’로) 주목을 많이 받아서 저도 기뻐요. 원래는 봄에 싱글로 내려다가, 완성된 곡이 마음에 들어서 ‘음반 타이틀곡으로 써도 되겠다’ 싶었어요.”
Q. 음반 작업은 언제부터 했나요.
“작업은 늘 하고 있는데요. ‘카디건’은 반 년 전쯤에 완성했고, ‘꽃밭’은 1년 전에 만들었어요. 봄에 음반을 내려다가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을 못 연다고 생각하니 두렵더라고요. 그만큼 용기도 필요했어요. 내 색깔을 확고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만든 첫 음반이에요. 라비에게 연상되는 사운드가 있어야 하겠다, 확실한 색깔을 갖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Q. ‘라비만의 색깔’을 찾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뭐였습니까.
“사운드요. 제가 잘 부를 수 있는 구성이나 멜로디, 코러스 등 구체적인 부분을 고민했어요. 사실, 뭐든 만들 수는 있거든요. 제가 부르지 않더라도, 누구든 부를 수 있는 곡을 만들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건 그냥 ‘작곡’이잖아요. 작곡가 라비가 아니라 ‘플레이어(가수) 라비’를 구체화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Q. 수록곡 대부분 사랑에 관한 노래인데, 마지막 곡 ‘아이 돈트 디나이’(I DON’T DENY)는 주제가 달라 보여요. ‘영원하지 못한 삶 속에서 떠나가는 이들에 대한 감정’을 표현했다고요.
“결국 모든 것을 하나씩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쓴 노래에요. 음반을 마무리하며 느낀 감정이었죠. 영원한 게 없는 것 같아 지금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뭐가 됐든 다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허무함이나 공허함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Q. 한 가지 생각이나 감정에 깊이 파고드는 편인가요.
“제 장점이자 단점이 외골수 성향이에요. 하나에 깊게 빠지고 오래 빠져 있는 편인데, 항상 순수하고 본질에 가까운 것에 꽂혔던 것 같아요.”
Q. ‘꽃밭’에서도 그런 면이 보여요. ‘사랑이 감당 안 된다는 말이 / 사실은 이해가 안 가’ ‘손을 잡으니 / 흔한 무기력감도 쉬는 게 돼’ 같은 가사를 보면 말이에요.
“자기 자신을 혼자 두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못한 채, 혼자서 깎여나가는 기분을 반복해서 느끼는 사람들. 제게도 그런 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꽃밭’ 2절 가사는 제가 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누군가와 함께하면 같은 상황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고 힘듦이 덜어질 수 있다고요.”
Q. 라비가 외로울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은 누구예요.
“주변 사람들 모두요. 저는 제 일을 사랑하고, 제 일터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거든요. 다른 아티스트, 스태프들과 섞여 지내며 일하다 보면 (외로움이) 해소돼요. 힘들 때도 있지만, 일을 하면서 제가 살아있다고 느껴요.”
Q. 직접 차린 레이블 식구들을 말하는 거죠. 소속 가수가 제법 많아요.
“다들 제가 같이 일하자고 꼬였어요.(웃음) 그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제 제안으로 함께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 책임감이 들어요. 신인 아티스트들은 지금 이 순간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남은 인생이 힘겨울 수도 있는 상황이라 (전속계약 제안에)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 저를 믿어줬으니, 그 이상을 보여줘야죠.”
Q. 지금은 ‘아이돌’이 부정적인 꼬리표로 여겨지지 않지만, 라비가 그룹 빅스 멤버로 데뷔했을 땐 ‘힙합 아이돌’이 낯선 존재였습니다.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이들도 많았고요.
“제가 좋아하는 장르니까, 그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당연해요. 다만 제가 아이돌 출신이기 때문은 아니에요.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힙합은 듣는 사람들도 자긍심을 갖는 장르잖아요. 뮤지션에게 요구되는 기준이 높고 인정받고픈 마음도 큰 것 같아요.”
Q. 첫 믹스테잎을 내며 ‘첫 걸음이 엉망이어도 일단 걸어야 두 번째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었죠. 일단 걸음을 떼려는 용기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부딪히진 않았나요.
“(믹스테잎 발매가) 대단한 도전정신이나 용기를 갖고 한 일은 아니었어요. 욕을 먹더라도 지금 내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나는 계속 음악할 거니까. 앞으로 더 잘하면 되니까. 그런 생각이었어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 보니, 못할 것 같았던 일들도 이룰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Q. 자전적인 노래에서도 ‘나 잘났어!’ ‘나 힘들어!’ 식의 표현을 쓰지 않아요. 오히려 ‘너도 록스타가 될 수 있어’ ‘실패해도 돼’ 같은 가사가 눈에 띕니다. 여러 경험이 쌓여서 이런 가치관이 만들어졌을 텐데,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경험이 있었나요.
“유난 떨고 싶지 않은 심리가 반영된 것 같아요. 제가 대단히 특별하지도, 못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보는 사람에게도 ‘쟤(라비)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을 텐데’를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어떤 계기로 제가 변한 건 아녜요. 그냥 제가 살면서 느낀 감정, 생각, 가치관이 가사에도 묻어나더라고요. 이러다가도 마음이 지쳐 공격적인 가사를 쓸 수도, 혹은 일상이 무탈해서 슴슴한 노래를 낼 수도 있겠죠. 제가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저 자신도 달라질 것 같아요.”
Q. 지금 라비는 어때요. 공격적이지도, 슴슴하지도 않아 보이는데.
“누군가는 제가 성공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제가 망했다고 말해요. 그런데 제가 제일 크게 느끼는 감정은 감사함이에요. 이렇게 활동할 수 있음에, 계속 나아가고 뭔가를 추구할 기회가 있음에 감사해요. 앞날을 욕심 낼 수 있을 만큼은 제게 기회가 있으니까요. 잘 되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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