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하면서 의사에게 질문하는 순서도 기사의 전개방식 그대로다. 질병에 따라 질문이 많이 달라지기는 한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항상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나요?’ 또는 ‘예방하기 위해 지양해야 할 생활습관이 있을까요?’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런 질문을 하면 의사도 곧 인터뷰가 끝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답변하는 목소리와 호흡이 편안해지고, 어깨의 긴장을 푸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런 방식을 관성적으로 따르다가 호되게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 난소암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려고 부인종양학을 연구한 대학병원 교수를 찾아갔다. 그 선생님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말투도 무미건조했다. 하지만 ‘BRCA유전자돌연변이’처럼 머릿속이 하얘지는 전문용어 대신 ‘물건이 고장나면 수리를 해야 다시 제대로 쓸 수 있잖아요. 수리하는 역할을 맡은 주체가 있을 것 아녜요. 그런데 그 주체에 이상이 생기면 어떻겠습니까. 고장난 물건을 제대로 고칠 수 없겠죠.’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질문으로 어김없이 난소암을 예방하는 방법과 피해야 할 생활습관을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내 기사의 마지막 문단이 될 예정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얘기 잘 안 하는데. 환자가 들으면 죄책감 느낍니다”라고 답했다. 나의 그럴싸한 기사 계획은 이날부로 박살났다.
원인이 명확한 질병은 매우 드물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의사의 답변에는 항상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뭔가를 안 먹어서, 뭔가를 안 해서 병들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환자는 세상에 없다. 내가 평소처럼 ‘잠을 충분히 자고 정상체중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기사를 마무리 지었다면, 그걸 읽은 난소암 환자에게는 회한이 찾아왔을 것이다. 밤을 새워 공부하고, 건강한 식단을 챙길 틈 없이 일한 자신을 탓했을지 모른다.
그동안 특정 질병의 예방법과 나쁜 생활습관을 질문했던 순간이 모두 흑역사가 됐다. 그 선생님은 난소암의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나쁜 기사의 원인은 명확히 찾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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