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은 마치 음습한 검은 곰팡이와 같아서 나도 모르는 새 머릿속 한구석에서 피어난다. 항상 그럴싸한 사명감으로 포장되어 내게 인식되곤 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단조롭고 답답한 나날이 이어지며 이 생각들은 더 굳어져 왔던 것만 같다.
이 머릿속 검은 곰팡이들을 자각하게 된 계기는 나의 어머니였다. 지난 월요일 아침, 작은 화실을 운영하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이 코로나19 확진 수강생과 식사를 해서 밀접 접촉자가 됐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화실로 향하던 순간까지도 나는 남 일처럼 여겨졌다.
어머니는 며칠 새 수척해져 있었다. 그날 확진자 동선에 겹쳤던 수강생과 학부모에게 일일이 상황을 알리느라 진이 다 빠져있었다. 혹여 마스크를 끼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는지 노트에 적으며 노심초사했다. 혹 자신도 확진된 것은 아닌지 얼굴에 그늘이 한 가득이었다.
여차저차 다른 사정도 알게 됐다. 어머니도 요 몇 달간 큰 손해를 보며 대출을 받아 화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수강생들은 절반이상 관뒀고, 매출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날도 있었다. 내가 걱정할까 말을 안 했단다. ‘올해 이곳을 팔아야 되지 않을까...’ 어머니가 말했다. 절대 그러진 말자고 했지만, 순간 ‘나도 돈이 없다’며 몇 달간 어머니에게 생활비도 주지 않았던 내 모습이 겹쳤다.
지난해 8월 25일. 코로나19 취재차 한 노모를 만났던 것을 기억한다. 서울역 근처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던 이였다. 그는 대림동에서 어렵게 수년간 돈을 모아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기자의 방문이 처음이라며 마치 귀인 같은 대접을 해주며 속마음을 털어놨었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던 노모의 흐린 눈이 머릿속에서 여전하다.
솔직히 고백컨대, 나는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의 아픔을 공감하는 척 하며, 더 자극적이고 더 극적인 에피소드는 없는지 이야기를 유도했다. 그가 필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방역정책의 불합리한 부분은 없었는지 더 캐묻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온전히 그의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했고, 곰팡이에 삼켜져 연기를 펼쳤던 것이다. 가게를 돌아서는 길, ‘세상 야속하다, 그래도 내일 기사는 이걸로 때울 수 있겠군’이라는 후련한 생각을 했다.
지금 그 가게가 있던 자리는 다 뜯어진 채 텅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언제부턴가 그곳을 지나갈 때면 알 수 없는 부채감이 나를 짓누른다. 길은 피해가곤 있지만, 머릿속 새겨진 노모의 모습과 목소리는 기억 속에서 더욱 또렷해져만 간다. 노모의 가게와 어머니의 화실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세상사 남 일이 내 일이 되는 것만큼 큰 비극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를 계기로 곰팡이를 걷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지난날의 나를 돌아본다. 그저 화제 거리를 쫓는 기자에 불과했나, 과연 기사는 쓰고는 있었나. 기자의 본질은 무엇이었는지, 오늘도 나는 마음을 다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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