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을 오랜 기간 연구하고 대안을 찾아왔던 취재원에게 들은 말이다. 그의 말대로 실제로 그랬다. 보도자료에서는 볼 수 없는 서민금융의 ‘날 것’들이 그곳에 있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선포한 ‘불법사금융과의 전쟁’ 당시에도 불법사금융 업자들이 뿌리는 홍보물들은 길거리를 굴러다녔고, 올해 법정최고금리 인하 후 시행된 ‘불법사금융 특별근절기간’도 지난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청량리시장 취재에선 IMF 당시 자금 융통을 위해 사채를 끌어썼다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한 사업장의 번듯한 사장이었던 그는 IMF 사태로 자금줄이 막히면서 급한대로 사채를 끌어쓰게 됐고, 잠시 버티나 싶었지만 순식간에 불어난 이자는 사채업자에게 자식같은 사업장을 넘겨주는 안타까운 비극으로 끝나게 됐다. 그는 지금 주차관리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시장상인회 관계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청량리시장에는 크게 두 그룹의 불법사금융업자가 오랜 시간 활개를 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요즘이야 상인들도 사채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아 피해자가 줄었다지만 여전히 한 두명씩 사채를 쓰고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한다.
통계지표들도 서민금융의 붕괴를 보여준다. 법정최고금리 인하는 서민금융 최후의 보루인 대부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의 평균 대출승인율은 10.8%로 법정최고금리를 인하한 지난 2018년(12.6%) 대비 떨어졌다. 여기에 대부업체 187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최고금리 인하 이후 월평균 신규대출 승인율이 하락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9.1%에 달했다.
돈을 융통하지 못한 저신용 서민들에게 남은 길은 파산 혹은 불법사금융 두 가지다. 이 중 파산하는 서민들도 급격히 늘고 있다. 대법원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개인파산 신청건수는 2만1024건으로 지난해 같은기간 대비 1806명 늘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 최대치다. 이처럼 통계로 잡히는 수치만 하더라도 증가세가 완연한데, 통계로 잡히지 않는 불법사금융 이용자는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 조차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서민금융에 진심으로 힘을 쓰고자 노력하는 것을 안다. 법정최고금리 인하로 생겨나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쏟아내고 있는 많은 정부지원 금융 및 지원방안들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실과 시장경제는 냉혹하게 저신용 서민들을 쳐내고 불법사금융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다. 책상에서 나온 법안은 현실의 ‘날 것’을 밀어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최고금리 인하로 약 330만명의 차주가 4140억원의 이자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불법사금융에 빠진 서민들의 고통은 금리 인하로 생겨나는 이득보다 크다. 다수의 ‘작은 행복’을 위해 소수의 ‘큰 고통’을 외면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