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여권통문’ 123년 후… 정치는 여전히 ‘남성 독과점’
②‘여권통문’ 123년 후… 월급은 여전히 ‘남성의 60%’
③‘여권통문’ 123년 후… 가사노동 여전히 ‘독박·공짜’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여자는 유주식시의(唯酒食施衣)라 하니, 어찌하여 남자와 다르지 않은 한명의 사람으로서 규방에서 밥과 술이나 지으리오.’(여권통문 원문 발췌)
여권통문을 쓴 1898년 여성들은 가사노동에 반기를 들었다. 여성은 오로지 밥과 옷을 짓는 줄만 아는 존재라는 ‘유주식시의’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여자아이들에게 살림이 아닌 근대 학문을 가르칠 것을 주창했다.
여자아이들에게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염원은 실현됐다. 대학 정보 공시 포털 학교알리미의 ‘고교 졸업생 진로 현황’에 따르면 전국의 일반계 고등학교 1814곳의 2021학년도 대학 진학률은 전문대를 포함해 여학생이 81.6%로, 남학생(76.8%)보다 4.8%p 높았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이미 10년 전부터 남성을 앞질렀다. 지난 2000년 성별 대학 진학률은 여성 84.6%, 남성 83.4%였다. 2011년 대학 진학률은 여성이 78.6%, 남성이 72%로 성별 차이가 6.6%p 벌어졌다. 이후 지난해까지 성별 대학 진학률 차이는 꾸준히 5%p 이상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교육권을 누린 여자아이들도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서울시의 ‘성인지 통계:서울시민의 일·생활균형 실태’에 따르면 지난해 15세 이상 서울 시민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3배 길었다.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2시간26분, 남성은 41분으로 1시간45분 차이 났다. 맞벌이 부부도 가사노동을 균등히 분담하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2시간1분, 남성은 38분으로 조사됐다.
가사노동 ‘독박’을 써도, 수고를 인정받지 못한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가사노동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의 83.5%는 “우리 사회가 가사 노동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다. “사회가 여전히 가사 노동을 ‘여성이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79.4%로 집계됐다. 가사노동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한 여성 응답자는 50.9%였지만, 남성 응답자는 19.7%에 그쳤다. 여자아이들은 살림에서 벗어나 학문을 배우게 된 것이 아니라, 살림과 학문을 동시에 하게 된 셈이다.
모윤숙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은 여성의 노동이 저평가된 탓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 통계청은 무급 가사노동가치 평가 자료를 통해 음식 준비, 청소, 자원봉사 등 무급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2019년 기준 490조900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25.5% 규모지만, 이같은 가치를 입증하는 데는 수십년이 소요됐다. 유급 가사노동자들은 올해 들어 근로기준법의 보호 테두리에 편입됐다.
모 사무처장은 “돌봄, 조리, 활동보조 등 가사노동과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직군의 근로자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며 “이같은 업무가 ‘여성들의 손을 빌려 공짜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프레임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질의 일자리에 진출하는 여성이 늘고, 여성 근로자의 수입이 증가하는 등의 가시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평등이 실현되지 않는다”며 “여성 노동을 둘러싼 저평가의 굴레를 끊어내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
취재 도움: 안소정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사무국장,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모윤숙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처장,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제5차 근로환경조사>, 여성가족부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한국노동연구원 <근로 여성 50년사의 정리와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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