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랑 노래라는 걸 내 친구들은 알겠지”
이랑 역시 ‘환란의 세대’가 사랑 노래라고 확신한다. 그는 이 노래가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죽을 만큼 괴로워 울부짖는 사랑 노래”라고 트위터에 썼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 곡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영상 아래에서도 울부짖음은 계속된다.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냈거나 떠나보낼 뻔한 사람들, 죽고 싶었으나 다시 살기로 한 사람들의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환란의 세대’뿐만이 아니다. 이랑은 신보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불행에도 분노하고 세상의 슬픔에 함께 눈물을 흘리는 일을 지속한다. “가상의 폭력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어떤 이름을 가졌던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여성 보편의 삶을 들여다보는 ‘박강아름’(이 곡은 박강아름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에도 실렸다) 등 “이랑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곡들”이 트랙리스트에 빼곡하다. 이랑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했던 2집과는 사뭇 다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이 음반을 “이랑의 일기장에서 출발한 이야기에 대해 이랑과 같은 세대, 같은 여성,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함께 쓴 돌림편지 같은 기록”(민중의 소리)이라고 봤다.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말할 수 있을까”
이랑이 자신 바깥에서 나온 이야기로 노래를 지은 데는 2016년 발매한 정규 2집의 영향이 크다. 첫 곡 ‘신의 놀이’에서 이랑이 던진 질문(“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에 젊은 여성들은 뜨겁게 호응했다. 당시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벌어진 해였다. 이랑은 여성단체를 비롯한 여러 인권단체로부터 집회에서 ‘신의 놀이’를 틀어도 되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방구석에서 홀로 울며 만든 노래를 사람들이 광장에서 듣고 싶어 한다는 게 내겐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이랑은 돌아봤다. 그는 불의를 바로잡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보며 “연대하면 살아갈 힘이 생긴다”고 느꼈다. 신보에 자신이 아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담기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미 너무 많이 다쳐서 마음이 닫힌 사람, 목소리를 낼 힘이 고갈된 사람, 그래서 마음속으로만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말할 수 있을까’라며 곱씹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가사를 썼어요.”
그 중에서도 3번 트랙 ‘잘 듣고 있어요’는 다른 이와의 연결로써 완성되는 특별한 곡이다. 이랑은 음원 출시에 앞서 2년 전 공개한 이 곡 라이브 영상엔 아직도 “어떤 시간에, 어떤 순간에, 왜 이 노래를 듣고 있나요”에 대한 대답이 줄을 잇는다. 직장 없는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노래를 듣는다는 사람, 자신이 겪은 일이 가정폭력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사람, 가족의 장례식에서 수도 없이 괜찮으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데 뭉친다.
이랑의 답도 “잘 듣고 있어요”다. 그는 이 곡에서 당신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고, 듣고 있다고, 기억하고 외우고도 있다고 말한다. 이랑은 팬들이 보내준 편지도 따로 모은다. 힘들 때마다 꺼내 읽기 위해서다. 이랑은 “자신이 뭐 때문에 지쳤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편지에 써준다”며 “내가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감각이 기쁘고 소중해요. 처음 노래를 시작했을 땐 저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거든요. 그런데 ‘내 얘기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턴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게 됐어요. 그럴수록 그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열정도 생겨요. 제 노래에서 위로받은 사람들이 다시 저를 위로해주는, 그런 연대감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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