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외래진료를 보러온 36살 환자의 첫 마디가 ‘애가 어려요’였습니다. 종양표지자인 CA 19-9 정상수치가 37인데 건강검진에서 300이 나왔다, 췌장암이면 어떡하느냐고 눈물을 뚝뚝 흘리시더라고요. 젊은 여성의 경우 난소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켰죠. CT촬영을 해보니 암이 아니었습니다. 난소에 있는 혹을 떼어내고 나니 정상 수치로 돌아왔어요.”
췌장암 등 악성질환이 발생할 경우 상승하는 종양표지자 CA 19-9 수치가 암이 아닌 양성질환에서도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국제학술지에 게재돼 주목받고 있다. 박병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환자들의 불안감과 불필요한 추적검사를 줄일 수 있게 됐다고 의의를 전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CA 19-9는 암이 있을 때 수치가 올라가는 종양표지자다. 주로 췌장암일 때 수치 상승이 확인되고 담낭암, 폐암 등 다른 암종 환자에서도 수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암 진단 및 치료, 재발 여부 확인시 활용된다.
CA 19-9 수치는 건강검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수치가 정상 범위(37)보다 높게 나타날 경우 암 가능성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게 되지만 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추적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암 크기가 작을 경우 CT촬영으로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건강검진 결과 CA 19-9 수치가 높아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췌장암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체중 감소, 기운 없음 등 췌장암과 비슷한 증상도 나타나니 환자들은 불안해하며 병원에 온다”며 “하지만 CT상으로 암이 안 보이는 경우가 있다. 암과 관련 없이 수치가 올라갈 수도 있지만 암 크기가 작아서 안 보이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원인을 알 때까지 추적검사를 시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필요한 검사를 계속하는 동안 환자들은 불안에 떨면서 지낸다. 3년간 검사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고자 우리 병원에 내원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간질환, 폐질환, 부인과질환, 당뇨병 등 내분비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CA 19-9 수치가 증가했고, 원인질환을 치료했을 때 수치가 정상화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내원 환자 6899명 중 △CA 19-9 수치가 정상범위보다 2배 이상(80 이상)이고 △암이 아니며 △췌장 및 담도질환자를 제외한 192명의 상승 원인을 분석한 결과, 간질환 63명(32.8%), 폐질환 32명(16.7%), 부인과 질환 38명(19.8%), 내분비질환 13명(6.8%), 비장 낭종 1명(0.5%), 원인불명 45명(23.4%)이 확인됐다고 했다. 특히 간 질환 중에서는 알코올성 간경화, 알코올성 간염, 약물 유발 간염 순으로 수치 상승이 확인됐고, 폐질환 중에서는 기관지 확장증 환자에서 수치가 800 이상까지 올라가는 것이 확인됐다.
그는 “기관지 확장증의 경우 증상이 좋아지는 질환이 아니다보니 수치가 높은 상태에서 떨어지지 않아 환자 입장에서는 암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궁내막증의 경우 수술 후 수치가 조절됐고 원인을 모르는 경우에도 추적관찰하면 좋아지는 것이 확인됐다”며 “췌장암 발생과 연관이 깊은 당뇨 환자들은 특히 더 불안해할 수 있는데, 당 조절이 되지 않을 때 CA 19-9 수치가 올라갔고, 당 조절이 되자 수치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결과를 바탕으로 악성질환이 없는 수치 상승 환자의 추적관리에 대한 알고리즘을 제시했다. 원인을 알 수 없다면 우선 질환에 대해 체크해볼 수 있다”며 “환자들의 불안감을 줄이고 불필요한 검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원인규명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암이라면 수치가 계속 올라갈 수 있다. 수치가 계속 올라간다면 추적검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한편, 이 연구는 지난해 국제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이후 2020년 전체 저널 탑(TOP) 100 중 40위로 선정됐으며, 다운로드 수는 15일 기준 5만9000건을 기록했다.
박 교수는 “(사이언티픽 리포트측에서) 좋은 논문이었다며 메일을 보내왔다. 이례적인 일”이라며 “그만큼 많은 사람이 논문 내용과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에 높은 관심을 받는 것 같다. 물론 추가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이런 연구들이 모아지면 향후 치료 가이드라인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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