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도 최진호의 다짐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5일 낸 첫 정규음반 수록곡 ‘테이크 잇’(take it)에서 “내가 해야 할 것들만 하면 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라고 되뇐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먹고 사는 게 불가능해지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최근 서울 합정동 푸이(phooey) 사무실에서 만난 최진호가 들려준 얘기다.
혈기왕성한 청년에게도 소신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정규 1집을 만들 때도 그랬다. 최진호는 자신이 만든 음악이 혹 난해하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때 민범·디에트 등 함께 작업한 동료들이 ‘이건 네 음악’이라며 용기를 줬다. 최진호는 ‘내가 원하는 대로 음반을 만들어보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고등래퍼3’를 3위로 마치며 단숨에 관심 받은 뒤에도, 사람들이 하는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꾸며낸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음반을 완성하고 눈물이 나올 만큼 기뻤어요. 예전엔 음반을 내더라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는데, 이번 음반은 달랐어요. 곡들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음반을 내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했습니다.”
음반 제목인 ‘체인지’(Change)는 ‘변하고 싶다’는 최진호의 바람을 반영한다. 지난해 상실을 경험하고 우울과 불면에 빠졌던 그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버려야겠다”며 ‘체인지’에 실릴 노래들을 만들었다. 음반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사랑’. 최진호는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마음이 부대끼는 날엔 ‘무너지면 다시 싸우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면의 독을 쏟아낸 덕분일까. 최진호는 “‘체인지’를 만들면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미소 지었다. “예전엔 작은 실수에도 세상이 나를 낭떠러지로 모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지금은 ‘액땜했다. 좋은 일이 생기겠다’고 여겨요. 주변 사람들도 제가 밝아졌대요.” 얼마 전엔 컴퓨터에 저장해놓은 신곡 파일들을 일괄 삭제하는 ‘대형사고’를 쳤지만, 그마저도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는 대범해졌다.
최진호의 두 번째 이름은 ‘블루웨일’(bluewhale)이다. 친구가 17세 생일선물로 지어줬다. 바다에서 수천㎞를 헤엄치는 고래처럼, 최진호가 음악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하길 바란다는 의미로 선물한 이름이다. 친구가 이름에 건 주문은 통했다. ‘래퍼 꿈나무’ 시절 센 음악에만 빠져있었다는 그는 “이젠 새로운 음악을 많이 접하고 시도하고 싶다”며 눈을 빛냈다. 자신의 우상 DPR 라이브처럼 “트랙을 적게 쓰고도 꽉 찬 느낌을 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단다.
“‘내 음악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다!’ 이런 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내가 발전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죠. 음악은 저를 움직이게 하고 때로 삶의 방향을 잡는 데도 도움을 줘요. 비록 작업하던 음악 파일을 최근 다 날려버리긴 했지만… 이전보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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