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개봉한 영화 ‘코다’(감독 션 헤이더) 속 이 장면은 누군가에게 현실이다. MBC ‘나는 가수다’가 인기를 끈 2011년, 가수들의 절창에 눈시울 붉히는 TV 속 관객을 보며 한 청각 장애인은 물었다. ‘공연장에 가면 정말 저들처럼 눈물이 나오나요?’ 질문을 받은 이는 서울 서교동에서 복합문화공간 네스트나다를 운영하는 독고정은 대표. 그는 ‘청각 장애인은 공연을 즐길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우러지는 문화 축제를 기획했다. 축제 이름은 ‘페스티벌 나다’. 소중한 ‘나’(I)가 모여 소중한 ‘다’(All)를 이룬다는 뜻이다.
2012년 시작한 ‘페스티벌 나다’가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다. 오는 23일과 24일 이틀간 온라인(네이버TV·유튜브)과 오프라인(서울 길음동 꿈빛극장)에서 밴드 크라잉넛, 디어클라우드 등 뮤지션 8팀이 관객을 만난다. ‘페스티벌 나다’에서 음악은 청각뿐 아니라 시각과 촉각으로도 전달된다. 장애 작가와 비장애 작가가 함께 제작한 미디어아트가 연주되는 음악에 실시간으로 반응해 시각화되고, 수어 통역사가 무대에 올라 음악을 역동적으로 전달한다. 무대 뒤 화면에선 연주되는 곡의 가사가 한글과 영어로 뜬다. 객석엔 진동 쿠션과 우퍼 조끼가 마련돼 음악을 진동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페스티벌 나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즐기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장벽이 없는)를 지향한다. 이곳에서 장애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당연한’ 존재다. 네스트나다 김하나 홍보실장은 “많은 공연장에서 안전을 이유로 장애인 객석을 한쪽으로 몰아 배치하지만, ‘페스티벌 나다’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데 초점을 둔다”고 했다. 휠체어 좌석은 공연장 구석이 아닌 앞쪽으로 배치됐고, 원한다면 장애인 관객도 얼마든지 비장애인 관객과 섞여서 공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 공수해온 우퍼 조끼 덕분에 청각 장애인 관객들도 얼마든지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에 환호할 수 있다.
‘페스티벌 나다’의 모든 무대는 ‘릴렉스 퍼포먼스’(Relaxed Performance)로 이뤄진다. 김 실장은 “소위 ‘관크’(공연 관람을 방해하는 관객의 소음·움직임)로 불리는 행동들도 ‘페스티벌 나다’에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며 “장애인 관객이나 그의 보호자가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고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뮤지션이 조명을 모두 끈 상태에서 노래하는 ‘암전 공연’은 ‘페스티벌 나다’만의 특별 프로그램이다. 장애가 얼마나 불편한지를 경험하게 하는 여타 일회성 장애체험과 달리, 관객들에게 예술적 감동과 깊은 잔상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졌다.
“개최할 때마다 적자”인 축제이지만, 네스트나다 식구들은 ‘페스티벌 나다’를 멈출 수 없다. 공연장을 나서면서부터 ‘내년 공연은 언제냐’고 묻는 관객들 때문이다. 예술가들에게도 ‘페스티벌 나다’는 소중하다. 시각장애인이자 특수학교 교사로도 일하는 배희관밴드 보컬 배희관은 “제1회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내게 무대를 허락해준 곳이 바로 ‘페스티벌 나다’”라면서 “해가 갈수록 발전하는 배리어프리 공연 문화가 이 사회에 보이지 않는 벽이 점점 허물어지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벽을 형상화한 ‘페스티벌 나다’ 포스터에는 매년 깨진 금이 하나씩 더해진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 선입견이라는 벽이 허물어지는 그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는 의미다. 김 실장은 “‘페스티벌 나다’가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즐기는 공연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배희관도 “건축물을 올릴 때 내진설계가 당연하듯, 배리어프리와 보편적 설계(장애인·비장애인 모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설계)가 당연한 세상이 돼야 한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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