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길음동 꿈빛극장에서 열린 ‘페스티벌 나다’. 주최 측 동의를 얻어 청각 장애인 관객들이 착용하는 우퍼 조끼를 입자, 음악이 피부를 타고 흐르며 온몸을 일깨웠다. 무대 위에선 노래가 영상과 수어·자막으로 형상화됐다. 듣거나 보지 못해도 음악을 느낄 수 있는 곳.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장벽이 없는)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나다’가 이날 열 번째 막을 올렸다.
밴드 크라잉넛, 위아더나잇, 배희관밴드, 바투가 출연한 첫날 공연에는 관객 약 170명이 다녀갔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인공지능(AI) 로봇 ‘나다랑’이 관객들을 반겼다. 시각 장애인들이 공연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다. 티켓과 함께 큼지막한 글씨로 공연 정보를 적은 안내문도 손에 쥐어졌다. 비장애인을 표준으로 여기는 다른 공연장에선 경험해본 적 없는 배려였다.
“룩, 룩, 룩셈부르크. 아, 아, 아르헨티나♬” 크라잉넛이 노래를 시작하자 무대 위 수어 통역사도 바빠졌다. 손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표정과 몸짓으로도 음악을 통역하다보니, 통역사들도 땀에 흠뻑 젖었다. ‘말 달리자’ 무대에선 관객들이 ‘떼수어’를 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왼손 엄지를 올려 ‘말’을 만들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그 위로 포갠 뒤 흔들면 ‘말 달리자’가 완성된다. 통역사는 ‘강남 스타일’의 ‘말춤’까지 따라 추며 흥겨움을 전했다. 올해 처음 ‘페스티벌 나다’에 참여한 바투는 열정적인 수어 통역에 “우리 밴드 다섯 번째 멤버”라며 감탄했다. 모든 노랫말과 멘트는 수어 외에 자막으로도 제공됐다.
무대 뒤편과 양쪽에 마련된 9개의 스크린에선 장애인 작가와 비장애인 작가가 함께 만든 미디어아트가 넘실댔다. 사운드에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눈으로 보는 음악’이다. ‘페스티벌 나다’ 단골손님인 배희관밴드 보컬 배희관은 “미디어 아트가 매년 달라진다”며 “매번 다른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님들이 경이롭다”고 했다. “삑- 삑- 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때문에 함성과 ‘떼창’이 금지되자 뼈다귀 모양 응원도구가 흥을 돋웠다. 누르면 ‘삐익’ 소리가 나는 이 응원도구에 뮤지션들도 “재밌다”(배희관) “삑삑 질러!”(한경록)라며 즐거워했다.
하이라이트는 조명을 모두 끈 상태에서 진행하는 암전 공연. “조명 감독님, 준비됐습니다.” 아티스트들이 사인을 보낼 때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공연장을 덮었다. 휴대폰과 카메라 불빛, 심지어 무대 위 악기에서 새어나오는 빛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시간. 시각 장애인이 느끼는 불편함을 체험하는 동시에, 예술적 감동과 깊은 잔상을 남기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주최 측은 “이 짧은 체험으로 시각 장애인의 불편함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감각으로 살아가는 내 이웃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1만5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어 가수들에게 ‘꿈의 무대’로 불리는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 마련된 휠체어 객석은 고작 82석뿐이다. 그간 본 수많은 공연에서 장애인이 얼마나 아무렇게 지워졌는지 떠올리니 얼굴이 화끈해졌다. 시각 장애인이자 특수 교사로도 일하는 배희관은 공연 중간 이렇게 말했다. “비장애인 위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잠시만이라도 이런 녹록치 않은 삶에 공감하고 함께 고민한다면 이 세상이 평등하게 바뀌리라 생각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허무는 ‘페스티벌 나다’는 밴드 디어클라우드, 너드커넥션, 엔분의 일, 크리스피 몬스터와 함께 24일에도 이어진다.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