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정보공개 의무화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준비가 턱없이 미진한 상태다. 특히 기업들의 아전인수식 ESG 공시가 가장 큰 문제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지난달 15일까지 ESG 관련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시한 기업은 70개사로 집계됐다. 자산 규모가 크고 시가 총액이 클수록 자율공시 비중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 집단에 소속된 기업이 55개사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3년 연속 자율공시한 기업은 19개사에 그쳤다.
현재 ESG 활동을 담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공시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공시하고 있다. 오는 2025년부터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가 의무화될 예정이다. 오는 2022년부터는 코스피상장기업에 대한 ESG 경영능력 심사도 이뤄진다.
아전인수식 공시, ESG 딱지 붙이면 그만?…불완전판매 이력을 ESG로 둔갑시키기도
문제는 의무화와 심사를 앞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대비 상태가 우려스러운 수준이라는 점이다.
한국거래소 점검결과 기업들이 공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품질은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ESG 관련 공시 사항들을 선택적으로 기재하고, 주요 사안과 경영전략과의 연계가 미흡한 것으로 지적됐다. 해외에선 원활히 이뤄지고 있는 경영평가지표(KPI) 설정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신뢰성과 적시성도 낮은 수준이었다. 검증 의견을 입맛대로 골라 적었을 가능성이 높고, 적시 공시도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송영훈 한국거래소 상무는 이날 열린 ‘글로벌 기준에 따른 ESG공시 확산전략’ 토론회에서 “기업들이 ESG 정보 공개 시에 대체로 유리한 것 위주로만 적는다. 일부 금융사의 경우 불완전 판매로 인해 만든 리콜제도를 ESG 성과 항목으로 자랑삼아 적어놓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불완전판매로 대규모 고객 피해를 초래한 맥락을 지운 채, 수습성으로 나온 대책을 ESG 성과로 강조하는 것은 아전인수라는 지적이다. 우리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주력계열사인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서 해외 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문제 등이 불거진 이후 리콜제도를 도입했다. 사고 수습과 당국의 지적에 대한 대응 목적이 높았던 경우다.
특히 그룹사 내에 소비자 리스크가 많았던 하나금융지주는 최근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며 소비자 보호 강화 성과를 강조했다. 하나은행과 하나금융투자 등 계열사에 리스크관리 조직이 강화된 점도 대대적으로 홍보됐다.
평가기관 관련 측에서는 관리감독 기준을 세우는 것이 시급하다는 말이 나온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기준 확립이 제대로 안 돼서 기업의 아전인수가 가능한 것”이라며 “솔직히 말하면 현재 ESG 관련 실적을 자랑하는 기업들도 자세히 보면 아닌 문제가 많다. 특히 생떼 부리는 기업이 많다. 제대로 준비할 생각 없이 기존의 상품을 들고 신평사와 회계법인을 찾아 그린 파이낸싱 모델이라고 평가해달라 우긴다. 그러면 대체로 거절 못 하고 통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접근법을 버리고 정석대로 차근차근 가도록 관리 감독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내 ESG 체계는 갈수록 엉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