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그런 데 들어가지 마” 여성주의 교지 가입을 고민했던 대학생 A씨가 지인에게 들은 말이다. 지인은 “거기 완전 메갈(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 아니냐”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여성주의 교지 가입을 포기했다. 행여 학과 내에서 엉뚱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교지가 사라지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여성주의 교지는 중앙대 ‘녹지’ 고려대 ‘석순’ 등이다.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학기 때문만은 아니다. 따가운 시선은 교지 활동을 멈추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다. 여성주의를 말하고, 쓰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많다.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많은 대학에서 여성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 기구를 만들었다. 이른바 총여학생회(총여)다. 총여를 통해 ‘말하는 여성’이 생기자 자연스럽게 ‘쓰는 여성’도 생겨났다.
이들은 교내 신문 혹은 잡지 지면을 빌려 학내 성차별 기사를 작성했다. 여성주의 서적 독후감을 썼고, 만화를 그려 올리기도 했다. 여성주의 교지는 대학 내에서 비주류였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성주의 교지의 위치는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13년 건국대, 2015년 홍익대, 2018년 성균관대·동국대, 2019년 연세대 등에서 총여학생회가 문을 닫았다. 페미니즘 성향 여성주의 교지도 폐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에브리타임 등 대학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주의 교지를 향한 혐오 표현이 여과 없이 쏟아졌다. 여성주의 교지에 가입하려는 신입 부원을 찾기 어려워졌다. 필진을 찾지 못한 여성주의 교지들은 결국 차례로 문을 닫았다.
윤(가명)과 현(가명)은 서울 소재 대학에서 2년 동안 여성주의 교지를 썼다. 인터뷰를 통해 여성주의 교지 현 상황을 들어봤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윤
“안녕하세요. S 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편집부에서 2년가량 활동하다 현재는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는 윤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현
“저는 A 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모임에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대학원을 준비하는 현이라고 합니다.”
-교지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요.
윤
“S대 여성주의 교지는 일 년에 한 번씩 제작했습니다. 발간일에 맞춰 세 달 전부터 집중적으로 글을 썼죠. 나머지 시간에는 여성주의 고전이라고 알려진 뤼스 이리가라이, 도나 헤러웨이의 책을 읽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그 외에 독자간담회와 같은 행사를 열기도 하고, 학내 성차별 이슈에 대한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어요.”
현
“A대 여성주의 교지 모임은 교지 제작에 집중했어요. 세미나를 성실하게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는 얌전한 성향이었죠. 대자보도 썼지만, 평소에 조용히 숨어 있다가 글 쓸 때만 쏙 나오는 느낌이랄까.”
-여성주의 교지에서 활동한다고 주위에 얘기한 적 있나요.
윤
“저는 없어요. 일부러 숨긴 건 아닌데,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저희에 대한 학내 여론이 좋은 편은 아니었거든요. 여성주의 교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면 시선이 곱지 않았던 거 같아요. 사실 이건 어느 학교나 다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
“숨긴 적은 없어요. 누가 물어보면 아니라고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인간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편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한번은 수업 팀플레이에서 만난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어요. 한 사람이 ‘동아리 활동하는 거 있냐’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여성주의 교지를 만든다고 말하니까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던 기억이 있네요. 기분 탓일 수도 있는데 그다음부터 말도 안 걸더라고요.”
-활동 중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윤
“정신력이 강한 편은 아니라서 대자보를 붙이거나 교지를 낼 때마다 겁을 먹었던 것 같아요. ‘엄청나게 비난받지 않을까’,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욕을 하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요. 근본 없는 망상은 아니었어요. 한번은 동아리방에 앉아 있었는데, 문밖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 나는데 ‘여기가 메갈 본진이다’ 그런 대화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속상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나가서 따질 걸 그랬네요.”
현
“조직 관점에서 보자면 돈, 노동 과중 문제가 있었어요. 돈도 없고 사람도 없으니 구성원들이 엄청 힘들어했거든요. 학교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았고요. 하루는 교내에 교지 발간 홍보 포스터를 붙여야 했어요. 학칙상 학생복지팀에서 도장을 찍은 포스터만 게시할 수 있어요. 학생복지팀 직원이 도장을 꺼내며 소속을 물어보길래 ‘여성주의 교지’라고 답하니까 표정이 싹 변하던 게 기억나요. 저희가 포스터를 많이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그중에 절반 도장을 찍어 주더라고요.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으로요.”
-여성주의 교지가 사라지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윤
“코로나19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코로나 시국이 아니었어도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학내에 여성주의 혐오가 여전한 상황에서, 여성주의 교지에 들어오려는 친구는 적죠. 설사 들어온다고 해도 쉽게 피로를 느끼고 금방 떠나는 경우가 많고요. 일의 양은 전과 같은데 사람은 줄어드니까 업무가 가중되고 지친 이들이 교지를 떠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죠. 결국 몇몇 일 잘하고 헌신적인 사람에게 의존해서 운영돼요. 운이 좋으면 소수의 인원으로도 굴러가지만, 운이 나쁘면 폐간도 고려해야 하는 거죠. 결국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다는 게 여성주의 교지가 사라진 원인 같아요.”
현
“사람이 없으니 교지 편집하느라 밤새우는 일도 잦죠. 그런 일이 반복되면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어요. 구성원끼리 예민해져서 싸울 때도 많았고요. 서로의 소중함을 잊는 거죠. 우리는 위로할 사람이 우리밖에 없어요. 학교에서 욕먹는 건 기본이고, 학생회관에 교지를 놓으면 누군가 밤사이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어요. 심지어 어떤 부원은 부모님이 나서서 교지 활동을 그만두라고 강요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또 공감할 유일한 사람끼리 싸우는 게 힘들었어요. 더 연대하고, 위로했어야 했는데 아쉬워요.”
-여성주의 교지, 다시 부흥할 수 있을까요.
윤
“대학 사회 내에 여성주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남아 있다면 언제든 기회는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외부 상황이 좋았던 적이 거의 없었어요. 항상 위협받고, 사라짐을 강요당하니까요. 그런 것에 맞설 수 있는 공동체가 먼저가 아닐까요. 그래야 지속 가능한 여성주의 교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잠시 반짝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은은히 빛을 비추는 꾸준한 모임이요.”
현
“대학에서 여성주의는 반드시 이야기될 것이고, 이야기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오면 선배들이 망한 사례를 보면서 개선했으면 좋겠어요.(웃음) 무엇보다 연대가 중요한 거 같아요. 외부 상황에 맞서 싸울 힘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런 게 없으면 부원들이 너무 빨리 지쳐 버려요.”
조수근 객원기자 sidekickroo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