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5~20년 전만 해도 프로야구에서 데이터는 그리 인정받지 못한 파트였다. 그때의 선수들은 상대의 쿠세(습관)를 파악하고 플레이를 했다. 기껏해야 데이터는 투수의 투구 패턴, 수비 위치 변화 정도에만 쓰이는 정도였다.”
실업야구 현대 피닉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등에서 선수생활을 한 조경환 의왕베이스볼아카데미 대표는 과거 데이터 분석은 현장에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조 대표는 “예전에 내가 속해 있던 팀의 한 지도자는 본인의 감을 되게 중시해 경기 전에 진행되는 전력분석 시간에 아예 참가를 하지 않았다. 어떤 팀은 정말 보수적인 팀이라 아예 데이터를 다루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현재 한 프로야구팀에서 근무 중인 데이터 분석원 A씨 역시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은 데이터 분석을 뒤늦게 시작했다. 과거에는 데이터 없이 상대를 분석하는 단순 전력 분석이 이뤄졌다”라며 “2000년대 후반부터 프로야구에서 데이터 분석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했다.
A씨에 따르면 과거에는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 등 현장 인물들은 분석원들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무시하는 경우가 잦았다고 한다. 그는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전력 분석원이 하는 말을 코치들이 무시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과거에는 그런 비슷한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간혹 있었다. ‘야구를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무슨 훈수를 하냐’면서 무시하는 경우도 있었다”면서 “아무래도 현역일 때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라 낯설어 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우가 달라졌다. 현대 스포츠에서 데이터는 단순 상대 분석을 넘어 경기 결과 예측과 전략 수립 및 수정, 훈련 적응, 경기력 향상 등 다방면으로 활용된다. 데이터 분석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현재 프로배구 구단의 코치로 있는 B씨는 “프로스포츠에서 데이터 분석은 필수다. 데이터 분석 전담팀이 있는 프로야구처럼 많은 종목의 프로스포츠 구단들이 발맞춰 데이터 분석에 힘을 쓰고 있다. 운동만 하던 현장 코치들도 이제는 데이터 공부를 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프로스포츠 구단은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까
현재 대부분의 프로야구 구단들은 훈련이나 경기 때 트래킹 시스템(볼 움직임 추적)이 주가 되는 랩소도, 드라이브라인 시스템, 에저트로닉 카메라 등 다양한 촬영 장비를 활용해 데이터를 얻어낸다.
촬영 장비로 얻어낸 1차 데이터를 데이터 분석원들이 세분화해 데이터를 재가공하고, 이를 코칭스태프 및 선수에게 일일이 맞춰 제공한다. 여기에 세이버 메트릭스 등을 통해 기본적인 기록들 사이에 숨어 있는 의미를 탐구해 새로운 평가 지표들를 바탕으로 선수들을 다방면 분석한다.
A씨는 “최근에는 다양한 데이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트래킹 시스템(볼 움직임 추적)을 통해 선수의 투구와 관련된 부분들을 수치화해 볼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투수들의 볼이 안 좋다는 걸 본인들이 직접 보고 느낌을 밖에 말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장비를 통해 투수들의 RPM(공 분당회전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선수의 부족한 부분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타자들 역시 타구발사속도, 스윙 궤적 등을 파악해 폼을 수정하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득점과 어시스트, 선방 등 가장 기본적인 지표 이외에는 선수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적어 전력 분석에 애를 먹었던 프로축구는 최근 변화를 시도했다. 비프로일레븐, 핏투게더 등 다양한 데이터 전문 업체들과 협력해 선수들과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 실시간 영상과 최첨단 장비들을 활용하면서 선수들의 경기력을 수치화해 나갔고, 이를 구단 등에 제공하는 등 적절히 사용해 나가는 모양새다.
데이터의 집합체인 게임을 토대로 한 e스포츠는 예상과 달리 데이터 분석이 뒤늦게 자리 잡았다.
이전까지 대다수 선수들은 본인의 감과 경험에 의존해 경기를 치르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e스포츠 업계에서도 데이터의 필요성을 실감하면서 많은 구단들이 전력 분석관을 따로 두고 데이터를 수집한다. e스포츠 전문 데이터를 다루는 업체들과도 협업해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어내고 있다.
데이터 업체 팀 스노우볼은 자체 개발한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NUNU.GG를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의 농심 레드포스에 제공하고 있다. NUNU.GG는 자체 개발한 비저닝 AI(인공지능)를 통해 방대한 인게임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다양한 지표 및 시각화를 통해 데이터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LoL내의 기본적인 API 데이터 뿐만 아니라, 밴픽, 동선, 체력(HP), 마나(MP), 와드, 상태 등 다양한 데이터를 이해하기 쉽게 재가공해 보여준다.
스포츠 데이터, 이젠 일상으로
전문가, 프로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데이터는 이젠 생활 체육에도 뿌리를 내린 모양새다.
먼저 투수의 RPM, 축구 선수의 히트맵 등이 스포츠 중계 화면, 경기장 전광판 등에 나오면서 누구나 데이터를 쉽게 접하고 재가공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자연스레 데이터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무너졌고, 데이터를 직접 활용하는 이들도 속속 생겼다. 최근 스포츠 동호인들 사이에선 자신의 경기 내용을 데이터화 하는 것이 인기다.
축구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최근 사커비(SOCCERBEE)라는 어플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커비는 어플에 장소와 포지션, 세션 등 정보를 입력하고 웨어러블을 착용 후 경기를 뛰면 전체 경기의 이동 거리와 최고 속도, 스프린트 횟수와 히트맵 등 경기 중계 화면에서 볼법한 데이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게임처럼 골이나 도움 등 기본 수치 이외에도 다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긴 평점도 확인할 수 있다.
사커비를 개발한 황건우 유비스랩 대표는 “경기가 끝난 뒤 곧바로 데이터를 확인하고 이를 공유하면서 축구를 즐기는 동호인도 축구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걸 느껴 사커비를 만들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경기 종료 후 바로 자신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커비는 최근 풋살 모드도 추가했다.
야구 동호인들은 영상과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해, 프로 선수처럼 자신의 폼을 교정하고 있다. 야구 레슨장에 구비된 다양한 트래킹 장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데이터가 가미된 코칭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사회인 야구를 즐기는 황윤재(32)씨는 최근 야구 레슨장을 통해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경기를 뛸 수 없게 돼 부득이하게 야구 레슨장을 찾았던 황씨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아카데미 레슨장에 트래킹 장비가 설치돼 있었고, 장비를 통해 자신의 타격폼에 따른 스윙 속도, 스윙 궤적 등 다양한 부분을 실시간 영상과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맞춰 코치가 개선점을 지도해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황씨는 “타격을 하면 슬로우 모션 영상과 함께 타구 속도와 거리가 나온다. 그러면 코치님이 이에 맞춰서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을 짚어준다”라며 “처음에는 코치님이 수치를 말씀해주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내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니 야구가 더 재밌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도 의왕에서 야구아카데미를 운영 중인 조 대표는 최근 플라이트 스코프를 구입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약 80가지의 데이터 수치를 제공하는 플라이트 스코프는 비거리, 타격폼, 구속, 등 기본적인 데이터 부터 RPM, 릴리스 포인트, 투수 보폭 등 보다 심층적인 데이터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장비를 구입한 지 한 달 정도 된 조 대표는 아마추어 선수들이나 일반 동호인들과 함께 데이터를 보면서 코칭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조 대표는 “데이터 관련된 장비를 갖고 있는 학교가 적다보니 아카데미를 찾아온다. 처음 데이터를 보면 낯설어 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많다. 그래도 자신이 필요한 부분들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면서 훈련을 하니, 이제는 본인들이 먼저 데이터와 관련해 물어보는 경우가 잦다”면서 “영상을 아마추어 선수들과 부모님들도 볼 수 있어서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학생 선수는 촬영 장비와 데이터를 통해 스윙폼의 개선점을 확인했고 이에 맞춰서 코칭을 진행했는데, 비거리가 일주일만에 약 15m 가까이 늘었다. 선수의 잠재력을 보고 나도 놀랐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는 최근 들어 부쩍 데이터에 관심을 가지는 일반 동호인이나 유소년 선수가 늘어났다고 전했다.
그는 “아무래도 자신의 폼을 바로 앞에서 촬영하고 바로 볼 수 있다보니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 야구를 즐기는 동호인들도 데이터 훈련 뒤 구속이나 비거리가 늘어나는 걸 보면서 많이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