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이온 킹’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를 뚫고 3년 만에 한국에 닻을 내렸다. 욕망과 정념이 넘실대는 야만의 시대, 작품 대표곡인 ‘서클 오브 라이프’(Cirlce of Life⋅생명의 순환)가 주는 울림은 크고 깊었다. 탄생과 죽음이 연결된 속에 모든 생명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라이온 킹’ 속 프라이드 랜드는 시공을 초월해 관객들 마음을 파고들었다.
곡절이 많은 공연이었다. 애초 지난달 9일 개막하려 했지만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공연팀 입국이 늦어졌다. 다시 잡은 개막일을 하루 앞두고는 공연 스태프 중 한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이틀간 공연이 취소됐다. 3일 본 공연은 ‘라이온 킹’이 기다릴 가치가 충분한 작품임을 상기시켰다. 압도적인 규모의 무대 장치와 아름다운 음악, 풍부한 상상력과 표현력이 어우러져 관객들의 혼을 빼놨다.
심바의 왕위 계승식을 그린 첫 무대 ‘서클 오브 라이프’는 단연 압권이었다. 주술사 라피키가 아프리카 줄루족 언어로 노래를 시작하자, 물소·기린·영양·표범 등 온갖 동물들이 합창하며 무대로 모여들었다. 코로나19 방역 대책 때문에 동물들이 객석 통로를 행진하는 연출은 빠졌지만, 음악에 담긴 경이로운 생명력은 여전했다. 이 장면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150년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선정되는 등 이미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이야기는 디즈니가 1994년 공개한 원작 애니메이션과 동일하다. 왕자로 태어난 심바가 아버지 무파사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껴 프라이드 랜드를 떠났다가 끝내 다시 돌아와 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애니메이션을 뮤지컬로 되살린 이는 여성 연출가 최초로 토니 어워즈를 수상한 줄리 테이머. 배우와 인형(퍼펫)을 동시에 보여주는 ‘이중노출’ 기법으로 배역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의 상상은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완성됐다. 때론 용맹하게, 때론 활기차게, 때로는 우아하게 춤을 추며 공연장을 터질 듯한 에너지로 채웠다. 조명과 천을 활용한 연출도 볼거리였다.
여러 생명의 조화를 역설하는 작품인 만큼,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토대는 작품 배경이 되는 아프리카다. 줄루어 말고도 콩고어, 스와힐리어, 호사어, 소토어 등 6개 아프리카 토착 언어를 작품에 썼다. 수사자 무파사와 심바의 의상은 마사이 전사 복장에서, 암사자 날라의 의상은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워다베족에서 모티브를 따 만들었다. 왕의 집사인 코뿔새 자주에겐 서양식 정장을 입히되, 쿠바 직물에 기반을 둔 기하학적 무늬를 새겨 넣었다. 연출자 테이머가 인도네시아에 머물며 아시아 가면 무용극과 인형극을 연구한 경험도 작품에 녹아들었다.
한국 관객을 위한 팬서비스도 마련됐다. 자주는 1막에서 무대를 덮은 대형 천을 보며 “동대문 시장에서 파는 샤워커튼 같다”고 말했다. 3년 전 대구 공연 때는 ‘서문시장’을 언급했다. 악당 스카에 의해 새장에 갇힌 뒤엔 한국 전통 민요인 ‘아리랑’을 부르기도 했다. 품바는 식사 메뉴를 고르면서 “번데기 샌드위치를 먹겠다”고 했고, 심바가 왕이라는 사실을 안 뒤에는 한국어로 “대박”을 외쳤다. 자막에도 ‘극대노’ ‘최고 존엄갑’ ‘아싸’ 등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신조어가 여럿 등장해 웃음보를 터뜨린다. 공연은 다음달 1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이어지며, 이후 부산 드림씨어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